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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사치스러운 세상에 반증한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 실격』
이슈
2021-03-15 08:58:57

안녕하세요. 에디터SU 박서령입니다.

 

홀로 보내는 시간이 길어지는 요즘, 여러분께 띄우고 싶은 질문 하나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 세상에 관하여 얼마나 고민하고 계시는가요?

세상이 너무 광범위하다면 개인이라는 독존에 관해서는 얼마나 고민하고 계시는가요?

이것도 너무 추상적이고 허풍에 지나지 않는 흰소리 같다면,

여러분 자신에 대해선 얼마나 고민하고 계시는가요?

 

여러분, 인간이란 본질에 대해 하루에 한 번이라도 생각해본 적이 있으신가요? 아마 대부분은 당장 눈앞에 안친 걱정거리나 밀린 업무 등, 생존을 위한 하루를 살아내기도 벅찰 겁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저조차도 정해진 일거리를 겨우 해내다가 지치기에 십상이니 말입니다. 하지만, 인간이란 본디 사유하는 것에서 삶의 목적을 찾고, 목적을 실현해내는 과정에서 자신을 성장시킵니다. 삶을 마무리하는 순간까지 성장하는 과정이니, 이 세상에 완전한 어른은 존재할 수 없고 이치에 어긋나지 않는 인간이 되어가는 것이죠. 그리고 그 개인들이 모여 세상을 성인(聖人)의 사회로 구축할 테죠. 그러니 본질에 대한 사유 없이 굴레에 속박된 삶을 산다면, 우리는 어떤 가치를 지니고 살 수 있을까요? 그래서 저는 이렇게 소통할 기회를 빌려, 읽는 것만으로도 인간에 대해, 개인의 역할과 자신에 대해 사유할 수 있는 책을 소개하려 합니다.

 

바로, 일본 쇼와 시대의 전설적인 작가, 사유가 빠진 사치스러운 세상에 반증하려 한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 실격입니다.

 

 

다자이 오사무는 1940년대 일본의 혼란스러운 시대 상황을 가장 적나라하게, 불필요한 감정을 잘라내고 표현한 작가로 꼽힙니다. 당시 일본은 2차 세계 대전에서 패망한 후, 모든 국민이 도탄에 빠져 동요하던 시기였습니다. 국민은 불안에 못 이겨 정신적 공황 상태에 빠지고, 극복보다는 하루하루를 견뎌내느라 자신을 도려냈죠. 다자이 오사무의 작품은 기댈 곳이 필요했던 국민, 그중에서도 젊은이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으며 데카당스 문학’, ‘무뢰파 문학의 대표 주자로 불립니다. 바로 이 시기에 인간 실격이 발표되어 그야말로 너무 시의적절한 작품이 되었죠. 다자이 오사무가 많은 이의 가슴에 맺힌 건 그의 삶에 두드러진 굴곡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다자이 오사무는 생에 네 번의 자살 기도가 미수에 그쳤는데, 첫 번째 자살 기도에선 뜻을 함께했던 다나베 아쓰미가 죽게 됩니다. 또 다른 자살 기도 직후엔 맹장염과 복막염이 겹쳐 진통을 다스리기 위해 마취약 파비날을 사용했는데, 이를 계기로 약물 중독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그는 육체적 쾌락, 음주, 약물 등 소위 방탕한 생활을 벗어나지 못했는데, 그에게 이런 자유로운 생활은 그를 파고드는 우울감에서 벗어나게 하는 수단이었습니다. 하지만 1948, 다자이 오사무는 연인 야마자키 도미에와 함께 다마 강 수원지에 투신하여, 생애 다섯 번째 자살 기도로 서른아홉 살의 생을 마감했습니다. 다섯 번의 극단적 선택이 그가 한평생 우울감에 좌절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데요, 그는 어째서 고통의 시간을 보내야만 했던 것일까요?

 

다자이 오사무는 일본 아오모리 현 쓰가루에서 부유한 집안의 11남매 중 열째로 태어났으며, 여섯 번째 아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왠지 저 자신이 늘 부끄럽고 세상에 환멸을 느꼈는데요. 자신의 집안이 고리대금업으로 부자가 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는 자신만 고급 옷에 넉넉한 식사를 하는 것을 죄악으로 여겼습니다. 그러던 중 다자이 오사무는 그 죄책감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나고자 마르크스주의에 깊이 빠져들게 됩니다. 평등을 주창하던 마르크스주의가 그의 자기혐오와 부끄러움을 한 꺼풀 벗겨내 준 것이죠. 그는 매우 적극적으로 마르크스 운동을 펼치고 도왔으며, 자신의 집을 근거지로 삼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 사실을 안 맏형이 마르크스 운동을 그만두지 않으면 모든 경제적 지원을 끊겠다고 엄포를 놓았고, 다자이 오사무는 3년간의 좌익 운동에 마침표를 찍었습니다. 다자이 오사무는 운동을 접고 동료들에게 등일 보인 것에 엄청난 수치심과 죄송스러운 마음을 떨쳐내지 못했습니다. 제 집안의 부조리를 혐오하면서도 그 울타리를 벗어나지 못하는 자기 자신에 대한 모순을 힐난하기만 했죠. 사실 제가 지금까지 말씀드린 건 다자이 오사무의 인생에 아주 단편적인 부분에 불과합니다. 그가 우울감에 잠식될 수밖에 없던 이유를 조금이나마 아시겠죠? 그리고 이러한 다자이 오사무의 자전적 소설이라고 할 수 있는, 그의 생이 녹아든 소설이 바로 인간 실격입니다.

 

인간 실격에는 요조라는 인물이 등장합니다. 이 책은 요조가 제 삶을 찬찬히 회고하며 독백한 수기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요조의 유년기부터 서술되어, 마지막에는 그가 살았는지 죽었는지도 모를 흐릿함으로 끝을 맺습니다. 이 책은 부끄럼이 많은 생애를 보냈습니다라는 문장으로 시작되어, 세상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요조는 인간을 두려워합니다. 인간이 도통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고, 개인의 집단으로 뒤엉킨 사회를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는 늘 알 듯 모르는 불안감에 휩싸였고, 자기 자신조차 무엇을 하며 살아가는지 알 수 없어 겁에 질렸죠. 대신 요조는 익살이라는 가면을 뒤집어씁니다. 요조는 제 말마따나 인간을 두려워하면서 단념할 수 없어서철저히 인간의 편에서 인간을 속이기로 한 것이죠. 철저한 연기로 인간과 먼 거리를 두는 것, 그게 요조가 불가해한 세상을 견디는 방법이었습니다. 익살떠는 게 더 피곤할 수도 있겠지만 요조는, 그렇게 함으로써 진실을 말하지 않아도 되었기에 더욱 능숙하게 숙달된 익살꾼이 되어갑니다. 자신이 느끼는 세상에 대한 환멸과 모멸을 이해시키는 것보다 한결 편했겠죠.

 

이런 성격의 요조는 다자이 오사무 그 자체로 볼 수 있습니다. 동북 지방 시골 고풍스러운 집안에서 태어난 것, 열 명 정도 되는 가족이 모여 사는 것, 자기 연민과 자기혐오가 점철되어 끝없는 우울감에 부유하는 것까지 다자이 오사무를 떠올리게 합니다. 요조는 불안을 느끼는 것으로 자신이 살아 있음을 실감했습니다. 이 혼돈의 시대에서 요조가 살아가는 방법은 세상이 잘못되었음을 인지하며 상념에 깊이 젖어 드는 것이니까요. 물론, 자존감은 낮지만 똑똑하고 신념이 강한 요조에게 그런 고찰의 시간은 홀로 있을 때만 찾아왔습니다. 어쩌면 요조는 인간과 이 세상의 모순을 누구보다 가장 잘 알고 있기에 괴로웠던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면 이쯤에서 우리는 의문이 듭니다.

 

 

정말 어째서, 우리는 상실감 가득한 요조에게서 위로를 얻는 것일까요? 그리고 온통 자기 환멸과 세상에 대한 힐난이 가득한 인간 실격을 놓지 못하는 것일까요? 보통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히어로적 캐릭터가 등장합니다. 보통의 인간들과는 조금 다른, 강인하고 특별한 인물이 등장해서 세상을 구하거나 정의를 지키죠. 그것을 목격하는 우리는 그 찰나에는 통쾌하고 대리만족을 느끼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렇지 못한 와 작품 속 히어로를 비교하며 실망합니다. 현실 속 인간과 이 세상은 작품에 쓰인 것처럼 그렇게 올바르거나 낭만적이기 못하기 때문이죠. 그러나 인간 실격속 요조는 나약함을 그대로 내보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좌절과 죽기 직전의 고통을 그대로 목격하고 직시하게 되죠. 우리는 요조를 바라보며 때로는 우울감을, 때로는 죽고 싶을 만큼의 수치심을 느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차차 우리네 삶과 다를 바 없다는, 그 한 줄의 힘이 엄청난 위로를 가져다줍니다. 물론, 현실과 소설의 허상은 단단히 구분해야 하겠지만요.

 

 

그렇다면 인간 실격의 제목이 인간 실격인 이유는 무엇일까요? 솔직히 다자이 오사무나 요조가 그렇게 세상에 환멸 났다면, 그냥 모든 걸 등지고 자기 자신만 돌보며 살면 되지 않았을까요? 도대체 왜 자신의 육신을 고통스럽게 하면서 이 사치스러운 세상에 반증하려 한 것일까요? 저는 인간이란 사회의 일원인 개인이기에, 그 범주에서 벗어날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인간의 위선을 자기 자신도 혐오하면서, 온전히 등지고 돌아서기엔 겁이 났기 때문이죠. 그렇기에 다자이 오사무와 요조는 인간의 자격에서 실격되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여러분, 그런데 왜인지 이들의 모순에 공감이 되지 않으신가요? 우리네 삶과 너무 비슷하지 않나요? 다자이 오사무는 바로 그 교집합을 파고들어 우리에게 큰 감명을 남긴 것입니다.

 

앞서 말했듯, 인간이란 사유의 존재입니다. 다소 억울하기도 하지만, 인간이란 독존은 고독하고 지독한 존재더군요. 그러니 인간의 집체인 사회는 어떻겠습니까. 여러분, 요조의 삶이 어떻게 세상에 반증할지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그리고 인간 실격을 읽는 그 시간 동안 여러분 안에 내재한 사유의 물꼬가 얼마나 트일지 기대되지 않으신가요? 우리의 삶이 실격되거나 실패의 생이 되지 않길 간절히 바라며, 이만 마무리하려 합니다. 우리의 마음을 함께 빚어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인간 실격(세계문학전집 103)
다자이 오사무 /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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