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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루이의 특별한 하루_엄마와 아이가 함께 읽어도 좋은 책
파란꽃잎
2021-04-28 15:54:08

한 때 동화작가가 되고 싶다고 막연히 꿈을 꾸었었다. 글 한 줄 안쓰면서 말이다. 원 참. 꿈꾸는 대로라면 피아니스트도 하고 외교관도 되었겠다. ㅎㅎㅎ 그래. 내친김에 뭐. 요즘 핫한 윤여정 배우님처럼 오스카 상도 타보자.

그렇다고 막연히 꿈만 꿨던 것은 아니었고, 아주 약간의 사소한 실천을 하긴 했었다. 굳이 비유를 하자면 삼계탕을 요리하기 위해 봉지에 든 닭 한마리랑 찹쌀을 사러 가려고 외출복을 입는 노력을 기울였다 정도랄까.

내가 했던 것은 서점 어린이 코너에 가서 신중하게 그림동화책 한 권 한 권 읽고 살피기였다. 막연한 꿈을 막연하게 간직하기에 쉽고 편한 방법이었던 것 같다. ㅎㅎㅎ

사실 그 때 가장 마음에 와 닿던 그림책을 몇 권 골라 사오기도 했었다. 집에 갖고 있으면서 내가 읽기도 하고, 또 어떤 책은 지인들에게 선물하기도 했었다. 그림동화를 지인에게 선물하는 20대는 아마 흔치 않았겠지만 아무튼 그 때 그렇게 말랑말랑한 감성을 갖고 있었었다.

한동안 뜸하게 잊고 있던 그림책을 다시 읽게 된 것은 아이를 낳고 나서이다.

그런데 읽을수록 묘하게 감동을 받으면서 여운이 남는 그림책이 있다. 얼마전 줌으로 소설 읽고 이야기 나누는 모임에서 그림책을 읽고 서평쓰기를 분석하고 생각을 나눈 적이 있다. 제법 근사했다. 어린이가 읽었을 때와 어른이 읽었을 때 같은 책을 보고도 아마 다른 것을 읽고 느끼고 얻어갔으리라. 모임에서 알게 된 바인데 어린이가 좋아하는 그림책도 있었고, 특히 어른이 좋아하는 그림책도 있다고 했다. (어른들은 교훈이 좀 있어야 좋아하고, 어린이들은 교훈은 개나 줘라~ 내 맘을 찰떡같이 잘 읽어주는 그림책을 좋아한다고)

어른들 몇 명이 모여 앉아 줌에서 모임을 갖는데 의외로 그림책을 읽으면서 생각거리를 나눌거리들이 꽤 많이 쏟아졌다. 서로 다른 느낌과 생각을 비교해보는 것도 중요한 관전 평!

그림책 '루이의 특별한 하루'는 어떨까.

아마 어린이들이 좋아할 책, 그리고 어른은 함께 읽으며 약간 뜨끔하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할 책.

부모와 아이가 함께 읽어도 좋을 책이다.


표지가 참 예쁘다.

주인공으로 보이는 소년 루이가 집사 아저씨와 함께 서 있다.

루이의 표정에는 자신감과 행복감이 넘쳐난다.

그런 루이를 굽어 바라보는 집사 아저씨의 얼굴표정과 제스쳐에서도 따뜻한 신뢰가 느껴진다.

표지, 합격!

그런데 속지를 넘겨 첫 장을 읽어나가는데, 루이에게는 사연이 있다.

마냥 행복한 어린이는 아니란 말이다. 으리으리한 저택에서 모자랄 것 없이 지내는 루이지만 식사는 혼자서 한다. 영화에서 보는 것처럼 아주 긴- 식탁에 혼자 앉아 우유와 시리얼, 파파야 쥬스를 마시며 하루가 시작된다.

루이의 하루는 이것저것 스케줄로 가득 차 있다.

학교에서 그리고 방과후에 끊임없이 배우고 숙제하고, 루이는 빡빡한 스케줄 때문에 기진맥진한다.

부모님과는 영상통화로 간신히 소통한다. 사업 때문에 파푸아뉴기니에 계시기 때문이다.

루이의 단조로운 일상에서 늘 옆에 하는 것은 집사 아저씨이다. 공손하게 머리를 조아리며 루이가 불편함을 겪지 않도록 돕는다.

어느 아침. 루이는 몹시 힘들게 일어난다. 반복되는 일상, 꽉 찬 스케줄로 로봇처럼 움직이는 루이에게 필요한 것은 놀이와 휴식이다. 슬픈 눈빛을 하고 있다. 루이는 소아우울증 증세를 겪고 있는걸까.

정서적으로 한껏 사랑받아야 할 나이에 엄마, 아빠와 떨어져 엘리트 교육으로 기계처럼 살아가는 루이를 보며 뜻밖에 집사 아저씨는 학교 앞에서 자동차를 돌린다. 이어서 도착한 곳은 열대 식물원 입구.

아저씨는 태연자약하게 이렇게 말한다.

"루이, 오늘은 숲속 학교야!"

숲 속 학교라니! 오우 마이 갓. 숨통이 좀 트이겠구나.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루이의 일상을 응원하던 나는 식물원에 들어가는 루이와 집사의 뒷모습을 보며 안도했다.

루이와 아저씨는 울퉁불퉁한 나무에 기어오르고(체통과 엄격함은 물렀거라~), 정글의 왕자처럼 칡줄기를 잡고 날아다니며 그들 나름의 모험을 신나게 즐긴다. 신발은 흙투성이, 옷은 엉망 진창, 머리 또한 까치집을 하며 헝클어졌을 것이다.

아저씨가 식물원에서 루이의 손바닥에 작은 선물을 안겨주고, 루이가 선물받은 씨앗을 심기 시작하면서 이야기는 고조된다.

씨앗은 얼마나 자라났을까? 그리고 식물원에 다녀온 후 루이의 일상은 어떻게 변했을까?

독자들이 쉽게 예상했겠지만 식물원에 다녀온 그 특별한 하루 이후 루이의 일상은 전과 다르게 변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어제와 같은 루틴으로 이것저것 공부하고, 수업을 받고 숙제를 했을 것이다.

그러나 평범한(그러나 기계적인) 일상에서 루이의 집에, 그리고 루이의 마음 속에 작은 씨앗 하나가 움터올라 창창한 잎사귀를 피우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우린 알고 있다. 일상을 살아가게 하는 힘을 루이가 얻었다는 것 또한 말이다.

이 책을 읽고 아마 어린이들은 학교를 재끼고 놀러다니는 갑작스러운 개인체험학습에 환호했을 것이고, 모험을 즐기는 아저씨와 루이를 보며 대리만족을 했을 것이다.

이미 학교를 졸업해버린, 아이를 둔 엄마인 내가 이 책을 읽고난 뒤의 감정의 결과 어린이들이 느끼는 감정의 결은 아마 다를 것이다. 나는 이 책의 주인공이 루이이지만 집사가 눈에 들어왔다. (어린이들의 보호자이자, 양육자이자, 집에서의 선생님역할도 하고, 청소부, 빨래 전문가 등등 오만 잡다한 것을 다 담당하는 집사같은 인생을 살고 있는지라...)

큰 어른이 되어 아이의 마음을 헤아리고 품어줄 줄 아는 집사.

눈에 띄게 앞에 나서지 않지만, 루이의 마음을 다독거려주고 모험의 길이자 작은 일탈로 먼저 안내하고, 더 중요한 것은 루이 혼자 모험을 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아이가 되어 함께 모험을 즐기는 집사의 모습을 보며 마음이 움찔했다.

자식 키우는데 정답이 없다지만 참 아이가 커나갈수록 아이가 좋아서 하는 일과 해야만 하는 일 사이에서 자꾸 후자를 강조하게 된다. 작년에 코로나를 겪으며 정말 그랬었다.

고백하자면 작년에 집에서 딸에게 비친 내 모습은 아마 '엄마'가 아니라 '짝퉁 학교 선생님(그것도 성질이 나쁜)'였을 것이다. 갑작스럽게 닥쳐온 코로나19로 모든 것이 마비되다시피하고 학교 수업은 원격 강의를 듣는 것으로 대체되며 작년에 참 길고 고단했다. 아이는 아이대로 선생님과 친구 얼굴 한 번 제대로 못보며 사회적인 만남이 단절된 채 EBS 이학습터 강의를 켜놓고 외로운 싸움을 했을 것이다. 퇴근 후 돌아서면 내가 했던 일이 너, 강의 다 제대로 들었니? 숙제 했니? 였고, 응 응 건성으로 대답하는 아이를 채근해 숙제를 직접 검사해보면 제대로 안되어 있는 경우가 많았다. 11살 아이에게 인강으로만 이루어지는 하루는 얼마나 고단했을까.

'루이의 특별한 하루'를 덮고 나니 집에서 엄마가 아닌 선생님 역할을 하고, 버럭버럭 소리를 질렀던 나의 모습이 스쳤다. 온 나라가 질식될 것 같은 긴장감 속에 살던 코로나 시기에 아이는 루이같은 마음 아니었을까. 작년 어느날은 아이와 함께 잠깐 밖으로 나가는데 아이가 소스라치게 놀라며 이런 말을 했었다.

"엄마, 나 양말을 너무 오랜만에 신어봐."

단절되어있던 딸아이가 했던 말이 떠올라 울컥하다.

역사에 만약에 라는 가정법은 없다지만 엄마라는 이름으로 만약에 라고 주절주절거려보고 싶다.

만약에.

만약에 루이의 집사처럼 마음을 읽어주고, 작은 일탈을 함께 해나가면서 마음의 힘을 스스로 가져나갈 수 있도록, 마음 속에 씨앗을 하나 심어 푸릇한 잎사귀가 창창하게 울거진 덤불이 될 때까지 기다려주었더라면.

먼지가 붙고, 머리가 헝클어지고, 때론 옷과 신발이 엉망이 되면 또 어떤가.

인생은 어차피 고결한 곳에서 레드카펫을 밟으며 우아하게 살아가는 게 아닌 걸 너도 나도 알지 않나.

힘들 때 옆에 있어주고 무엇이 묻으면 툭툭 털어주고, 손수건을 꺼내어 얼굴을 닦아주는 엄마.

그런 엄마가 되었어야 했다.

마음 깊은 곳에 있는 우물물이 찰랑거리며 간질간질한다.

미안한 감정이다.

루이의 일상은 변하지 않았다. 루이는 늘 그랬던 것처럼 공부를 하고 학교를 갈 것이다.

좋은 습관과 루틴을 만들도록 최소한의 것들은 해내도록 환경을 만들어주지만(아... 최소한!! 그 기준과 스케일의 다양성을 또 어찌 설명하리오. 최소치 기준잡기는 세상 다양할텐데!!) 아이의 마음 속에 작고 푸릇한 잎사귀 하나 싱싱하게 흔들거릴 수 있도록 마음을 읽어주는 그런 엄마가 되고 싶다.

곧 머지 않아 사춘기가 올텐데 딸 아이와 함께 웃었던 기억, 함께 풀밭을 뒹굴고, 추억을 쌓아나갔던 기억들로 그 위기의 순간들을 넘길 수 있기를.

어떤 책을 읽으면 감정이입을 하며 맞아 맞아 하고 읽고,

어떤 책을 읽을 땐 어머 이럴 수가 있나 충격이야 라고 중얼거리며 읽는다.

어떤 책을 읽을 땐 책 속의 이야기에서 나의 모습과 그림자를, 그것도 감추고 싶은 모습을 읽어내며 부슬비가 마음을 훑어내려가는 것처럼 축축해져 버린다.

이 책은 맞아 맞아 와 축축해지는 그 사이 어디쯤의 감성을 건드린 책이었다.

개인적으로 그림 동화 '루이의 특별한 하루'는 부모가 읽으며 성찰하기 좋은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땐 아. 그렇구나 하고 넘겼지만, 서평을 쓰기 위해 다시 붙잡고 읽으면서 이 짧은 책을 읽으며 엄마로서의 역할을 다시금 생각해보게 되었으니 말이다.

어쩌면 작년 코로나의 경험들 때문에 힘들었었던 마음들이 이 책을 통해 봇물처럼 터져나온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저자가 의도했던 것 이상으로 내가 느껴버린 것일지도.

아무튼 개인적인 감상평은 이제 그만 하고 이제 따뜻한 그림 한 장 읽으며 글을 마무리하려 한다.


까꿍.

집사와 루이. 모두가 기준은 다르지만 각자 겪는 녹록치 않은 무게가 있다. 그 무게를 내려놓고 덤불 속에서 숨바꼭질하며, 마음을 무장해제할 수 있는 시간. 어깨 힘 빼고 쉬어갈 수 있는 자투리 시간들을 가지며 살길. 가만히 바라다보아도 좋은 그런 마음 친구와 함께 있을 수 있길. 고대해본다.

이 책은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자유롭게 서평을 썼습니다.


루이의 특별한 하루(양장본 HardCover)
세바스티앙 무랭 / 진선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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