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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내 마음의 들꽃 산책
이엔
2021-05-26 04:34:17


선선한 바람과 함께 거리를 거닐 때면 길가에 피어있는 조그마한 들꽃들이 상냥한 인사를 건네오곤 한다. 누군가의 보살핌 없이 강인한 생명력으로 하루가 다르게 무럭무럭 자라나는 새싹들을 보며 삶의 경이로움을 느낄 때쯤, 문득 궁금해졌다. 사람에게도 각자의 이름이 있듯이 분명 저 아이들에게도 각자의 고유한 이름이 있을 텐데.

날이 좋은 봄날에 피어나 올망졸망한 꽃을 땅 위로 올려보내는 노루귀부터 마디마디 달리는 잎을 따라 그 줄기 끝에 고운 흰 꽃을 피워내는 애기나리, 털이 보송하고 연보랏빛 꽃들이 풍성한 해국, 사시사철 푸르름을 뽐내는 사철나무까지.

사계절이 뚜렷한 우리나라에 피어나는 축복 같은 생명들이 책 안에 차곡차곡 담겨있다. 나 역시 산책을 자주해 하루에도 몇 번씩 수많은 들꽃들을 만나곤 하는데, 그때마다 흔히 알려져 있는 야생화 외엔 뭉뚱그려 모든 종자들을 "꽃"이라는 이름으로 부를 수밖에 없었다.



그저 연구 대상이 아닌, 온 마음을 다 바쳐 식물 공부에 진심을 다해온 식물학자 이유미 님과 수많은 꽃을 앵글에 담아 자연의 싱그러움을 널리 알린 사진작가 송기엽 선생님의 따뜻하고 애정 어린 눈빛이 담겨있는 이 책 "내 마음의 들꽃 산책"과 함께라면 더욱 생기 넘치는 산책길이 되지 않을까 싶다. 표지에 담긴 앙증맞은 은방울꽃은 송기엽 선생님이 생전에 가장 좋아하셨던 꽃이라 한다
사람에게는 저마다의 향기가 있듯 나또한 누군가에게 선물 같은 존재가 되기 위해 두 저자의 힘을 빌어 소중한 존재들을 더 아껴주리라 다짐해본다.


설레임이 피어오르는 계절. 성급한 개나리는 꽃망울을 담기 시작하고 담장 너머로 보이는 백목련은 털이 소복한 겨울 눈이 눈에 뜨이게 부풀어 오른다. 재미난 점은 봄꽃들은 대부분 키가 작다는 사실이다. 숲속은 햇볕을 차지하기 위해 매일매일을 긴장감 넘치게 보내는 작은 경쟁터이기도 한데 부지런한 초봄의 꽃들은 나무들이 잎을 펼쳐 하늘을 가리기 전에 그 누구보다 먼저 열심히 올라와 꽃을 피워 아무도 가리지 않는 이른 봄의 햇볕을 독차지하곤 한다.


솜털이 부드러운 노루귀 또한 다 커봐야 10cm를 채 넘지 못한다. 풍선이 부풀러 오르듯 꽃망울이 화려한 복수초는 2월에서 4월까지 가장 예쁘게 피고, 설원 사이에서 겨우내 추위를 견디고 잎을 피워내는 한계령풀은 보는 이의 마음까지 환하게 만들어준다.


조금씩 푸른 새싹이 피어나기 시작하는 5월엔 순결한 흰색의 은종들이 조랑조랑 매달린 은방울꽃, 자양강장 효과가 매우 높은 약초로 유명한 삼지구엽초, 휘어진 줄기에 하트형의 꽃잎이 일렬횡대로 달린 뻗친 단발머리같은 매력을 뽐내고 있는 금낭화가 반겨준다.

본격적인 여름의 길목에 들어서는 8월엔 물에서 피어나는 수생식물들이 더욱 그 화려함을 뽐낸다. 오래된 못이나 논가에 초록색으로 둥둥 떠다니는 개구리밥이랑 손대면 톡 터질듯한 진한 분홍색 꽃 물봉선, 논에 물을 대는 도랑가에 자라나는 물달개비, 양지바른 습지에서 자라나 단정하고 균형 잡힌 다섯 장의 꽃이 아름다운 물매화를 만날 수 있다.


은은한 그리움이 묻어나는 계절 가을엔 보다 더 화려한 빛깔을 자랑하는 꽃들이 눈에 들어온다. 흰 꽃이 신선보다 깨끗하고 아름다워 선모초라고도 불리는 구절초, 연한 잎사귀 몇 장을 따서 고추장에 참기름을 넣고 비벼 먹으면 쌉싸름하고 향긋한 맛이 별미인 고들빼기, 식물 전체에서 향이 나 향기롭고 따뜻한 허브차를 끓일 수 있는 가을이 성큼 다가왔음을 알려준다.



흰 눈이 퐁퐁 내리고 물이 얼어 양분 운반이 힘든 계절인 겨울은 식물들에게 혹독한 시간으로 다가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감하게 겨울을 이겨내는 식물 중엔 달맞이꽃이 있다. 때론 추위가 씨앗에게 싹을 틔우는 자극이 되기도 하는데 식물의 삶과 인간의 삶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위틈에 피어 바람을 견뎌내는 해국, 연한 꽃잎 가운데 동그랗게 자리 잡은 진한 노란색 꽃잎이 앙증맞은 수선화, 모진 한겨울에 꽃을 피워 고결함을 뽐내는 한란이 겨울꽃의 대표적 예이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고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는 나태주 시인의 시처럼 들꽃들을 조금 더 아껴주리라 다짐해본다.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

내 마음의 들꽃 산책
이유미 / 진선BOO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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