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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프레드릭 배크만-불안한 사람들
버니
2021-05-31 20:49:37

'불안한 사람들'의 스토리를 간략하게 요약하자면..

이건 다리와 바보들과 인질극과 오픈하우스에 관한 이야기다. 하지만 사랑 이야기이기도 하다. 사실 여러 편의 사랑이야기다.

(309페이지 中)

 

딱 요렇게 요약 할 수 있을 것 같다.
아니, 더 심플하게 한 줄 로도 가능하다.

"바보들에 대한 이야기" 다.

 


프레드릭 배크만의 소설은 이번에 처음 읽어보는데 사실 '오베라는 남자'라는 책을 통해 많이 들어왔던지라 낯설지는 않은 작가였다.
그렇지만 직접 그의 소설이나 집필글을 읽어보진 못해 말그대로 그냥 '알고만' 있던 작가였다.
그런데 이번에 새로운 신작을 발표하면서 서평의 기회가 생겨 접할 수 있게 되었다.

흥미로운 표지 디자인, 그리고 각종 찬사로 시작하는 추천글들로 인해 읽기전부터 한껏 기대감에 부풀어 올랐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시작한 스토리의 처음은 아파트를 연상시키는 건물의 창문에 6가구의 실루엣 이미지와 경찰관 두명, 그리고 주요 등장인물들에 대한 소개글로부터 시작한다.

문득 경찰관과 은행강도, 각 등장인물 소개글들을 보고 추리/스릴러 장르물인가 라는 생각을 잠깐 해본다.
(하지만, 이 생각은 정말 잠깐에 머물렀다)

 


책의 서평을 작성하기 전에, 이미 책을 완독한 독자로써 이 책을 읽기 전 반드시 살펴보라고 이야기해주고 싶은 꿀팁!

첫번째. 책의 표지 디자인에 핵심 키워드가 다 표현되어 있으므로 주의깊게 볼 것!
불꽃놀이/토끼탈/피자/발코니창/원숭이&개구리&큰사슴 그림/와인/오픈하우스 전단지


두번째. 등장인물 소개글을 꼼꼼히 읽어볼 것!
필요하다면 인물간의 관계나 상황을 메모해 가면서 읽어보는것도 추천하지만 반드시 그럴 필요는 없다.
why? 친절한 작가는 후반부에 하나씩 모든 의문과 해소를 풀어주므로!!

 

여기까지 준비가 되었다면 모든것을 내려놓고 그냥 그대로 이야기 속으로 뛰어들면 된다.
장장 486페이지에 해당하는 기나긴 여정같지만, 실상은 한번 뛰어들면 자신도 모르게 빠져들 것이기 때문이다.

 

시작은 작은 도시의 현금을 보유하지 않은 은행에서 은행을 털려고 했던 무장강도의 사건에서부터 시작한다.
은행에서 현금을 보유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몰랐던 은행강도는 그 사실을 알게되자 당황으로 인해 마침 열려있던 은행의 맞은편 아파트의 오픈하우스로 도망가게 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많은 우연과 역대 최악의 인질들을 만나면서 이 이야기는 시작된다.

 

워낙 작은 도시였기에 10년전 다리에서 뛰어내려 자살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중대범죄도 일어난적이 없고 경찰서에서도 아빠와 아들로 구성된 경찰관 두명만이 이번 사건의 목격자 진술을 맡을만큼 소박하고 작은 도시였다.
그만큼 10년전 다리에서 뛰어내려 자살한 사람의 일이라던가 이번 은행 강도 사건과 같은 일들은 이 도시에서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으며 이 도시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크던 작던 다양한 형태로 영향을 주고 있었다.
특히 은행강도 사건은 역대 은행강도 사건중에 가장 어처구니없고 어이없는 일들의 연속이었음에도 10년전 다리위에서 뛰어내려 자살한 사건과 긴밀히 연결되면서 그로 인해 영향을 받았던 사람들 각자의 사정과 관계들이 해묵은 감정을 씻어내듯 하나씩 풀어내는 계기를 마련해 준다.

 

이야기의 흐름은 목격자 진술장면인 현재와 과거를 오고가며 쓰여지지만 절대 복잡하거나 어렵지 않게 구성되어 있다.
짧막짧막하게 나눈 단락과 디테일한 인물간의 관계와 설명, 그리고 위트와 유머가 적절히 조화를 이루면서 역대 어느 번역소설에서도 맛보지 못했던 서술구조의 스토리를 맛볼 수 있을 것이다.

 

먼저 10년전 다리위에서 뛰어내린 사건과 함께 은행강도 사건에 휘말리게 된 사람들을 살펴보자.


10년전 한 남자가 아이들을 위해 그동안 모은 돈을 투자했다가 한번에 날려 은행원으로부터 '모럴 해저드'라는 소리를 듣고 신관을 비관해 다리위에서 뛰어든 남자가 있다. 그는 죽기전 그 은행직원에게 편지를 남긴다.

 

다리에서 뛰어내려 자살한 남자의 사건 일주일후 또다시 그 다리 위에서 뛰어내리려다 결국 실패한 그녀, 나디아.
그녀는 현재 심리학자로 10년전 일을 계기로 자살한 사람들의 남겨진 가족들을 위한 봉사단체에서 봉사일도 겸하고 있다.

 

다리위에서 뛰어내리려던 남자를 다독이고 말렸으나 결국 이를 막지 못했던 야크.
그는 끝내 막지 못했던 자살한 남자의 일로 매일 그 장소를 방문하다 그 사건 일주일후 그 다리에서 또 다시 뛰어내리려 시도하는 그녀를 결국 막아서는데 성공한다.
그는 아버지 짐과 함께 현재 경찰서에서 근무중이다.

 

아들 야크와는 취향과 성향이 완전 정반대지만 그 누구보다 그런 아들을 사랑하는 선임경찰관 .
목사였던 죽은 아내를 잊지 못해 여전히 결혼반지를 끼고 다니고 약물에 중독된 딸을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다.

 

외도를 저지른 남편, 남편의 불륜상대였던 직장상사, 그리고 쫓겨난 집과 직장!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금액 6천5백 크로나!  그녀는 그렇게 은행강도가 되었다.
우연찮게 발견한 장난감인줄 알았던 진짜 권총을 가지고 은행을 무작정 쳐들어 가지만, 아뿔사!!
현금없는 은행이었다는것에 당황한 그녀는 도망치듯 들어선 오픈하우스에서 세상 황당한 인질들을 마주하게 된다.

 

현재 은행고위 간부이며, 10년전 다리에서 떨어져 자살한 사람에게 모럴 해저드를 운운했던 그녀, 사라.
죽기전 그녀에게 전달된 편지는 10년동안 그녀의 핸드백속에서 미개봉된 상태로 고이 보관중이다.
그가 다리위에서 뛰어내린 일주일후 그 다리에서 또다시 뛰어내리려는 그녀와 그녀를 구출하는 야크를 목격한다.
그 이후 그녀는 멀찍이서 나디아의 성장을 지켜본다.

 

아파트 발코니에서 담배를 피우는 습관이 있는 그녀, 에스텔.
담배를 피우며 늘 보았던 그 다리에서 누군가 뛰어내렸다는 기사를 접한후 그녀는 다시는 그 발코니에서 담배를 피우지 않았다.
와인과 담배, 책을 좋아한다.

 


낡은 아파트를 수리해서 값을 높게 파는 일을 주로 하며 정보 수집에 매우 집착하는 로게르.
젊은 시절 능력있는 아내와 아이들의 뒷바라지를 하느라 정작 자신의 출세는 이루지 못했다.

 

젊은시절 능력을 인정받아 승승장구하며 승진했던 유망한 에널리스트지만 현재는 남편에게 온전히 맞춰 생활하는 안나레나.

 

여여커플의 사랑스러움과 현실감을 그대로 보여주는 율리아와 로.
곧 태어날 아기와 함께 살 신혼집을 구하기 위해 오픈하우스를 찾았다.
새를 좋아하는 로와 만삭의 몸으로 출산을 앞둔 율리아(=율스)

 

연극배우이며 부업으로 의뢰를 받아 오픈하우스에서 깽판치는 업무도 겸하고 있는 레나르트.
로게르를 위한 안나레나의 의뢰를 받고 오픈하우스에 미리 대기하고 있던 그는 우연하게 인질이 된다.

 

새해 이틀전에 오픈하우스를 열어 손님을 맞이한 부동산 중개업자 "하우스트스트릭스 부동산입니다. 안녕하시죠?" 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그리고 10년후 그들은 은행강도 사건의 인질로 조우하면서 오픈하우스에 모이게 된다.
은행강도 사건의 전말부터 폭소와 황당함의 전개를 넘나들지만 사실 강도짓을 한 '그녀'의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그저 다독여주고 싶을만큼 어설픔과 짠내의 믹스를 만날 수 있다.

그녀뿐이랴?
오픈하우스에 모인 8명의 인질들과 그들을 심문하는 경찰관 2명의 일면에 쌓인 이야기들을 들여다보면 '겉'에서 보이는 일면과는 다른 삶의 내면속에서 번지는 수많은 번뇌와 '진짜' 삶을 알 수 있다.
이야기의 흐름을 따라가다보면 간혹 추리력을 발휘하게 되는 때도 있는데 이것을 파헤치는데 가장 큰 장애물은 사회적 통념과 젠더에 대한 틀에 박힌 사고방식이다.


이를테면 금융권의 고위간부인 사라
아버지와 아들만이 상주하는 경찰관
여성이지만 은행강도를 자처하는 그녀
여여커플의 결혼과 출산

 

일반적으로 '그럴것이다' 라고 생각하는 사회점 통념을 벗어난 몇몇 장치나 상황들이 곳곳에서 발견되는데,
옳다 그르다의 문제가 아니라 판에 박힌듯 생각해왔던 관계나 생각들에서 벗어나 확장된 시야에서 바라보았을때 그것은 그저 한 사람에 대한 이야기이고 삶으로 다가온다.
어쩌면 요란하다고도 말할 수 있지만 다양성을 지닌 사람이기에 그 자체를 받아들이고 조화롭게 사는것, 그것의 전제조건에는 '사랑'이 유일한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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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은 커피를, 한 사람은 차를 좋아한다.
선배는 경찰의 가장 중요한 원칙이 옳은 일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후배는 일을 옳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35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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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가 좋아하는 취향과 생각이 정반대라도 상관없다. 그들은 아버지와 아들, 아들과 아버지로써 존경하고 사랑한다. 때때로 부딪히지만 함께 하기에 가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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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엄마 배속에 있었을 때 아이들이 어떤 식으로 발버둥 쳤는지를 근거로 딸들을 부른다. 한 아이는 배 안에서 계속 점프하는 느낌이었고 한 아이는 항상 나무를 타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한 아이는 개구리, 한 아이는 원숭이다.

91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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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누군가를 이름으로 부를 필요는 없지 않을까?
애정이 가득한 그들만의 방식으로 '우리만의 단어'로 표현하면 그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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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그녀는 이후로 날마다 뛰어내린 남자와 자신의 차이점에 대해 고민했다. 그걸 발판 삼아 직업과 경력과 모든 인생을 선택했다. 그녀는 심리학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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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녀는 대처하는 법, 거기서 빠져나오는 법, 내려오는 법을 찾았다. 불안에서 놓여날 길이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불안을 안고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사람들이 있다. 그녀는 그런 사람이 되려고 했다.

155~156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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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을 이해하고 사랑하는것도 중요하지만, 우선적으로 '나' 자신을 이해하고 사랑하는 법을 알아가는것도 중요하다. 누구나 불안속에 머물며 살아가지만 어떻게 살아갈것인가는 스스로 대처하기에 달렸기 때문이다.

 

 

이렇듯 8명의 인질과 두명의 경찰관, 그리고 은행도둑을 통해서 표현되어지는 삶과 사랑에 대한 이야기도 흥미롭고 새로움 깨달음이었지만, 이것외에도 중복적으로 사용되는 단어를 통해서도 또 다른 재미를 발견할 수 있었다.

 

예컨대, '스톡홀름' 이라는 단어다.


▶스톡홀름 출신: 동성애자라는 뜻
▶어떤 장소라기보다 하나의 표현. 우리의 행복을 방해하는 짜증나는 인간들을 한꺼번에 지칭하는 상징적인 단어
▶스톡홀름 증후군: 인질이 범인에게 감화되고 범인과 동조하게 되는 심리현상

 

경찰들과 목격자들의 유쾌한 티키타카 속에서 종종 발견되던 단어인데 동일단어 다른의미로 표현되었다.
저마다의 사정과 저마다의 삶의 방식, 그리고 해석방식이 다르지만 어떻게 살아갈것인지 어떠한 선택을 할것인가는 각자의 선택에 달린것이겠지?
누군가는 다리에서 뛰어내리고, 누군가는 내려온것처럼..

 


책을 읽으면서 몇몇 문장들이 인상깊에 뇌리에 남아 기재해두고 간간히 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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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회가 생길때마다 어떻게든 도우면돼. 살릴 수 있는 사람을 살리면서. 최선을 다해. 그런 다음... 그걸로 충분하다고 수긍하고 넘어갈 방법을 찾으려고 노력해야지. 실패하더라도 그 안에 매몰되지 않게.

293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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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특정 나이까지 부모를 무조건적으로 걷잡을 수 없이 사랑하는 이유는 단 하나, 부모가 자기 것이기 때문이라는 말은 어쩌면 맞는 말일지 모른다. 부모와 형제자매가 당신을 평생 사랑할 수 있는 것도 똑같은 이유에서다.
진실. 세상에 진실은 없다. 우리가 우주의 경계에 대해 어찌 어찌 알아낸 게 있다면 우주에는 경계가 없다는 것뿐이고, 신에 대해 아는 게 있다면 우리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뿐이다. 따라서 목사였던 어머니가 가족들에게 요구한 것은 간단했다. 최선을 다하라는 것. 내일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오늘 사과나무를 심으라는 것.
구할 수 있는 사람은 구하라는 것.

473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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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당신이 누군지 모른다.
하지만 오늘 저녁에 집으로 돌아가거든, 오늘 하루가 끝나고 밤이 우리를 찾아오거든 심호흡을 한 번 하기 바란다. 오늘 하루도 무사히 보냈지 않은가.

478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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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에서 연일 보도되는 '소식' 속에는 진실과 거짓이 섞여 진짜 '진실'은 없다.
바라보는 시각이나 해석에 따라 늘 달라질것이므로..
10대, 20대, 30대.. 어느 시대를 살든 얼마를 살았던지 상관없이 삶을 산다는것 자체는 녹록하지 않다.
그리고 생각한대로, 뜻대로 이루어지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포기하고 여기서 끝낼 순 없지 않은가?
현재 할 수 있는것에서 최선을 다하고, 최선을 다했다면 그것으로 만족하고 수긍하면서 스스로를 다독이는 방법도 알아갈 필요가 있다.
그것의 첫걸음으로 적어도 오늘을 '무사히' 살아낸 내 자신에게 '수고했다'는 말 한마디부터 시작해보면 어떨까?

 

코로나로 인해 세계적으로 많이 불편하고 불안한 시국에 따뜻하고 감동적인 이야기로 훈훈함을 얻게 되어 행복감이 든다.
등장인물 한명한명이 입체감있고 디테일하게 표현되고 있어 어느하나 마음이 가지 않는 인물이 없다.
위트있고 재치있는 입담을 지닌 옛이야기를 실감나게 들은것처럼, 생생하게 머릿속에서 그려진다.

 

장소는 매우 단조로운 오픈하우스를 주 무대로 그려지지만 그 속에서 벌어지는 사건사고와 상황들, 마지막까지 하나의 캐릭터도 허투루 그리지 않은 작가의 필력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예전에 더글라스 캐네디 소설을 처음 접하고 느꼈던 황홀함과 푹 빠져드는 느낌을 새삼 다시 느끼게 되어 프레드릭 배크만 작가의 소설에도 한동안 꽂혀있을 것 같다.
더글라스 캐네디 소설은 그려지는 장소에 있어 무한 상상력을 끌어내주었는데 프레드릭 배크만은 섬세하고 디테일한 감정묘사와 상황들, 그리고 위트와 유머가 매우 매력적인 작품이었다. 어쩌면 단연 톱일지도~ ㅎㅎ

 


조만간 또 그의 작품을 만나보고 싶다.




불안한 사람들(반양장)
프레드릭 배크만 / 다산책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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