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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프레드릭 베크만,<불안한 사람들> : 불안은 그것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동력을 제공하기도 한다
강해솔
2021-06-09 23:46:35






<불안한 사람들> 프레드릭 베크만



*스포일러 주의*


   어떤 책이든지 첫 문장은 열 번 이상 읽어야 한다고 배운 뒤로 그렇게 하고 있다. <불안한 사람들>은 '이것은 인질극에 대한 내용이지만 그것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다.'로 시작한다. 대낮에 벌어진 인질극, 그보다는 인질극에서 생겨난 우정(?)에 가깝다. 은행 강도는 의도치 않게 인질극을 벌이게 되는데, 그래서인지 어딘가 어설프고 얼굴을 가린 마스크에서는 악의가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선함이 느껴진다. 겉보기엔 위험한 인질극이 벌어지는 그 오픈 하우스에서 인질들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의 불안을 털어놓는다. 남편의 죽음부터 인생의 경험이 많은 노인 에스텔은 결혼, 회사, 육아 등 걱정에 휩싸인 다른 인질들에게 조언을 해주는데, 이 장면 속 대화들이 가슴 뭉클하기도 하면서 상황과 어울리지 않아 웃음이 났다.


   프레드릭 베크만의 <오베라는 남자>는 아직 안 읽어봤지만, 그의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등장인물들의 티키타카 오고 가는 대화와 그 속에서 전해지는 교훈을 애정 하는 것 같다. 최근 읽은 소설은 전부 어둡고 암담한 현실을 반영한 내용이라 <불안한 사람들>의 범죄 코미디가 처음엔 적응이 안 됐었다. 경찰 조사를 받는 무거운 상황에서도 전혀 무겁지 않은 분위기 속 경찰이 무능력해 보이기도 하고 묻는 말에는 답 안 하고 이상한 헛소리만 하는 인질들이 답답해 미칠 지경이었는데, 그 비협조적인 태도가 전부 은행강도를 보호하기 위한 인질들의 합작이었다니...!!

   그들의 우정이 깊어진 순간은 언제일까. 토끼 탈을 쓴 사람이 창문 밖으로 불꽃놀이를 보고 있는 책표지가 말해주는 듯하다. 에스텔은 죽은 남편과 옥상에서 터지는 폭죽을 바라본 그 순간에 기억이 멈춰있다. 은행강도는 경찰에게 인질들을 풀어주는 조건으로 폭죽을 요구하고, 그것이 곧 에스텔을 향한 은행 강도의 선물이었다. 인질들과 강도가 다함께 터지는 폭죽을 바라본 그 순간 이 소설이 시작됐다.

   

   책 3/5쯤 읽었을 때 은행 강도가 여자였다는 사실이 최고의 반전이었다. 따지고 보면 그리 큰 반전도 아니다. 내가 가진 편견 때문에 반전처럼 느껴졌을 뿐이다. 왜 당연히 직장 상사와 바람난 사람은 '아내'라고 생각했지? 왜 당연히 '남편'이 생계유지를 위해 강도를 저질렀다고 생각했을까? 경찰들이 은행강도를 놓친 가장 큰 이유도 '애초에 범인을 남자로 설정'했기 때문이었다.

불륜을 저지른 인물들이 많이 등장한다. 불륜 자체는 전혀 미화될 것이 아님에도 상사와 바람난 은행강도의 남편을 볼 때와, 음악을 사랑한 남편과 문학을 사랑한 이웃집 남자를 동시에 사랑한 에스텔, 그리고 약혼자가 있는 상황에서 꽃집 여자와 사랑에 빠진 율리아를 볼 때 우리의 시선은 다르다. 같은 불륜인데 왜 다르게 보일까? 이 밖에도 동성 커플이 등장하는 내용 등 절대 작가가 그냥 설정한 게 아니구나, 독자로 하여금 우리의 편견을 향한 일종의 테스트였다는 생각을 했다.



여기 한 사진이 있습니다.

사진 속 뒤돌아 있는 여자 너머로 펼쳐진 바다가 있습니다.

여자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요?

책에 묘사된 대로 머릿속으로 그려봤을 때 나는 '바다를 보면서 저 끝엔 뭐가 있을지 궁금해하고 있다 ' 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누군가는 여자가 바다를 보며 감동한 것 같다고 한다. 또 다른 누군가는 그 여자는 사실 다리 위에 서 있는 것이며 자살을 고민하는 중이라고 말한다. 서로의 거리를 좁히기 위해 존재하는 다리가 생명을 포기하는 장소로 비치는 것처럼 불안은 멀쩡한 대상도 위험한 대상으로 만든다. 어떤 심리학자는 '인간의 불안은 왜 없어지지 않을까?'에 대한 이유로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생존을 위해서는 놀라고 긴장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불안은 그것으로부터 벗어나려는 동력을 제공해 주기도 한다. 인질극이 벌어지는 집을 바라보았을 때 피투성이가 난무하는 거실을 상상하는 두려움 대신, 강도의 선량함을 알아챈 인질범들이 사건 현장에서 탈출할 수 있도록 도모하는 장면을 상상할 수 있다.


🏷책갈피

"돈을 어떤 데 쓰세요?"

"사람들과의 거리를 사는 데 쓰죠."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비싼 음식점은 테이블 간 간격이 넓어요. 비행기 1등석은 가운데 자리가 없고요. 특급 호텔에는 스위트룸 고객들이 드나드는 출입문이 따로 있죠. 지구상에서 가장 인구밀도가 넢은 곳에서는 가장 비싸게 팔리는 것이 남들과의 거리예요." p145

“반드시 살고 싶은 사람과 반드시 죽고 싶은 사람의 유일한 공통점이 그거다. 뛰어내리려는 곳의 높이를 정확하게 알고 있어야 한다는 것." p164

“항우울제를 복용하는 환자들이 대개 기분이 좋았던 때를 그리워할 것 같죠? 아니에요. 약을 끊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다시 울 수 있으면 좋겠다고 해요. 사랑하는 사람과 슬픈 영화를 볼 때... 그 사람과 같은 감정을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요." p312


해당 도서는 다산북스로부터 제공 받아 리뷰를 작성하였습니다:)


불안한 사람들(반양장)
프레드릭 배크만 / 다산책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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