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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불안한 사람들이 모여 만들어낸 완벽한 위로
앨리스
2021-06-16 15:13:51


책의 처음 3장을 읽었을 때, 나는 소리 내서 외쳤다.


“뭐야 완전 재밌잖아!”


그렇다. 이 책은 ‘완전 재밌’다. 솔직히 말해서 이렇게까지 많이 피식거린 책은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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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들은 날이 갈수록 짧은 텍스트에 익숙해져 간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스마트폰으로 접하는 형태의 글에 익숙해져서 그렇다고.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형식적인 면으로 현대인들에게 딱인 책이다. 책 자체는 두껍고 길지만, 이야기가 옴니버스식으로 짧게 끊어져 있어 상당히 읽기 편하다. 심지어 상당히 많은 등장인물이 각자의 이야기를 들고나오고, 그게 정신없이 얽히고설키는데도, 읽기 편하다. 퍼즐을 맞추듯 하나하나 맞춰나가는 재미가 있다.


그렇다면 형태만 현대인들에게 딱일까. 아니다. 내용도 완전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을 위한 내용이다. 물론 이 강도 사건이 어떻게 된 일인지 자체는 금방 파악할 수 있다(특히나 추리소설 애호가 들이라면..). 사건의 진상과 별개로 이야기를 계속해서 읽게 하는 가장 큰 힘은, 바로 등장인물 각각의 이야기가 어떻게 모여 하나의 이야기가 되었는지 궁금하게 하는 데에 있다.


‘불안한 사람들’이라는 제목이 어떻게 보면 가장 큰 스포이기도 한데, 이 책은 정말 딱 ‘불안한 사람들’의 이야기다. 겉으로 보기엔 멀쩡해 보이는 사람들, 멀쩡하지 않아 보이는 관계들, 불안한 사람들. 


책을 모두 읽은 뒤 이 서평을 작성하며, 나는 모든 내용을 압축하고 있는 제목을 토대로 내용을 크게 ‘불안’과 ‘사람’으로 나누어 생각해보았다. 



1. 불안


영어 제목에서 사용된 Anxious는 크게 ‘불안’으로 사용되는 단어지만, 이 불안이 어떤 ‘불안’인지 생각해보아야 한다. 모든 감정은 종류가 다양하다. 이 불안이 시험 전의 초조한 ‘불안’인지, 걱정스러운 마음의 ‘불안’인지, 위험을 직면한 상태에서의 ‘불안’인지. 모든 불안은 다 다른 온도를 갖고 있다.


사전에  Anxious를 검색하면 세 번째로 나오는 뜻이 있다. 열망하는, 간절히 바라는. 불안과 동떨어진 듯 보이는 이 뜻은, 사실 생각해보면 전혀 연관이 없지도 않다. 인간은 ‘자신에게 없는 것’을 간절히 바라기 마련이다. 그리고 보통 없다는 것은 불안을 야기하곤 한다. 앞서 언급한 모든 불안에서, 모든 것이 충족된 상태라면 전혀 불안을 느끼지 않을 테니까. 


이 책에서 나오는 사람들은 모두 결핍되어있다. 모두, 하나도 빠짐없이. 이 결핍이 그들을 ‘불안하게’ 만든다. 달리 말하자면 그들은 모두 열망하고 있다. 더 나은 삶을. 책의 모두는 나아가고 살아가길, 결핍을 채우길 열망한다. 그래서 그들은 불안하다.


‘불안’은 책 전체를 관통하는 키워드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들은 불안하기 때문에, 결핍되었기 때문에 하나의 결론에 도달할 수 있었다. 모두가 행복한 하나의 결말. 모자라고 엉뚱해 보이는 사람들이 서로의 모든 것을 해결해 줄 수 있을 것이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으리라.



2. 사람


불안한 이들이 어떻게 서로를 위로할 수 있었을까. 이에 대해 말하기 위해선 먼저 불안한 사람들의 불안과 결핍이 어디에서 왔을까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바로 사람들에게서 왔다. 책 속의 모든 등장인물은 모두 다 자신만의 불안을 안고 있으며, 이 불안은 주변 사람들로부터 왔다. 


주목해야 할 점은 사람이 사람을 불안하게 만든다는 점이 아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사람을 완전하게 하는 것 또한 사람이라는 점이다. 이들이 강도 사건으로 묶이고 엮이지 않았더라면, 위로받을 수 있었을까? 사라는 편지를 열어볼 수 있었을까? 나디아와 야크는 만날 수 있었을까? 짐은 딸에게로 향할 수 있었을까? 


물론 너무 많은 우연과 너무 많은 행운이 함께했다. 하지만, 삶이 원래 그렇지 않은가. 원래 우연히 굴러가는 게 인생인데 뭐. 이들이 이렇게 모여서 서로를 치유해주는 과정이, 그렇게 일어나지 못할 일도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야크의 어머니가 했던 말 중에 이런 말이 있다. 


우리는 세상을 바꿀 수 없어. 심지어 사람조차 바꿀 수 없을 때도 많지. 조금씩 천천히가 아닌 이상. 그러니까 기회가 생길 때마다 어떻게든 도우면 돼. 살릴 수 있는 사람을 살리면서. 최선을 다해. 그런 다음…… 그걸로 충분하다고 수긍하고 넘어갈 방법을 찾으려고 노력해야지. 실패하더라도 그 안에 매몰되지 않게.


이를 실천한 사람들이 아파트 안의 사람들이다. 그들은 조금씩 천천히 서로를 위로했다. 그리고 그 조금이 모여서, 결코 혼자서는 이뤄낼 수 없었을 위로를 만들어내고, 서로의 결핍을 채워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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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그럼 이 내용이 왜 현대인들에게 중요할까?


솔직히, 2021년을 사는 20대 평범한 취준생으로서, 난 모든 것이 불안하다. 세상은 넓고 신경 써야 할 것은 많은데 현실은 무겁다. 당장 먹고 살길도 깜깜한데 환경도 신경 쓰이고, 코로나도 신경 쓰이고, 잘은 모르겠지만 정치도 신경 쓰이며… 아무튼 세상 모든 것들이 날 불안하게 하는데 나 자신만의 골칫거리들도 있다. 불안해 죽겠다. 나만 이렇진 않을 것이다. 우린 다 불안하다. 급변했고 급변 하고있는 세상의 흐름을 따라가기도 벅찬데 자신만의 힘듦도 이겨내야 한다. 


책 속의 주인공들 모두에게 이런 나의 모습이 보였다. 아니, 정확히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현대인의 모습이 보였다. 또 책 속 구절을 하나 인용하려 한다.


모두들 다른 누군가의 스톡홀름 출신인가 보네요.


그래, 우린 모두 내가 갖지 못한 것을 가진 누군가를 부러워하며 살아간다. 불안하고 위태롭게 휘청거리며. 하지만 내가 부러워하는 그도 결국 불안한 사람이다. 그리고 이 책은 불안한 우리가 모이면 불안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아주 작은 것으로부터 시작해, 서로를 단단하게 잡아주고, 결국 서로가 서로에게 위로가 되는 모습을. 아주 작은 우연에서 시작해.


우연. 때로는 말이다, 가장 예상하지 못했던 것들로부터 가장 필요한 위로를 받기도 하는 법이다. 예를 들어 사지도 않을 아파트를 구경하러 가서 강도의 인질이 된 상황이라던가, 그 강도를 잡으러 들어간 아파트에서라던가, 범인을 코앞에서 놓아줄 때라던가. 


아니면 그냥 강도 이야기, 웃긴 이야기인 줄 알고 읽기 시작한 책에서 자신을 발견할 때라던가.


그리고 가끔은, 그냥 생각 없이 웃음이 나오는 이야기를 읽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는 법이니까.

불안한 사람들(반양장)
프레드릭 배크만 / 다산책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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