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스트님

환영합니다

서평
서평인증] 카이사르의 마지막 숨
2021-09-08 22:14:26

올리버 색스의 풍부한 일화와 말콤 글래드웰의 대중성을 갖췄다.- 엔터테인먼트 위클리-

빌 브라이슨과 같은 익살스러운 입담의 소유자-뉴 사이언티스트-


좋아하는 역사책에서 흥미롭게 읽었던 '카이사르' 라는 이름을 제목에 달고, 올리버 색스와 말콤 글래드웰과 빌 브라이슨 등의 기라성 같은 작가들과 견주어진 저자의 책이라니 기대를 솟구치게 만드는 책이었다. 미리 말해두건데 이 책은 카이사르나 역사와 아무 상관없는 과학책이다. ^^


이 이야기에서 카이사르에게 뭔가 특별한 점이 있는 건 아니다. 나는 '카이사르의 마지막 숨'을 변형한 문제를 들은 적이 있다. 그것은 카이사르 대신에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가 주인공으로 등장한 문제였는데, 사실 고통스러운 마지막 숨을 내쉰 사람이라면 누가 등장하더라도 상관없다. (p. 20) 

세균에서부터 흰긴수염고래에 이르기까지 숨을 쉬며 살아간 생물 중 어떤 것을 선택하건, 그 생물이 마지막으로 내쉰 숨 중 일부가 지금 혹은 얼마 후에 여러분의 몸속에서 순환하고 있을 것이다. 이것은 비단 호흡에 관한 이야기에만 국한해 생각할 필요가 없다. (중략) 기체 는 우리가 숨 쉬는 공기를 주었을 뿐만 아니라, 고체 대륙의 구조를 바꾸었고, 액체 바다를 변화시켰다. 지구 이야기는 '곧' 기체 이야기이다. 사람에 대해서도 똑같이 말할 수 있는데, 지난 수백년 동안 특히 그렇다. (p. 21) 

공기가 없다면, 기체가 없다면, 우리는 몇 분조차 살 수 없다. 하지만 장담하건대, 여러분은 자신이 들이마시는 공기에 대해 거의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살아갈 것이다. <카이사르의 마지막 숨>은 바로 이런 태도를 바꾸게 하려고 쓴 책이다. (p. 25) -머리말 中-


드시 '카이사르'일 필요는 없었다. 저자의 말처럼 예수였어도 되고 그냥 특별하지 않은 흔하디흔한 동물이었어도 되었다. 다만 좀더 강렬한 호기심을 일으킬만한 '숨'쉬는 존재이면 되었다. 왜냐하면 공기없이는 십분도 못버티는 인간이 공기에 대해 생각해본적은 십분도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오존파괴니 기후변화니 등등의 환경이야기는 일상에선 좀체 느껴지지 않는 먼 이야기처럼 느껴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저자는 우리가 매일 호흡하는 '숨'에서 시작함으로써 주의를 환기시킨다. '숨' 즉 공기 이야기는 생각보다 흥미롭고 생각보다 친숙하며 생각보다 엄청난 것임을 깨닫게 해주고 싶어한다. 그리고 결론부터 말하자면 저자의 의도는 성공적이다. ^^​


총3부로 구성된 이 책은 각 부 마다 3개씩의 장으로 내용을 전개하고 있다. 지구환경적 공기의 탄생부터 인류가 공기를 인식하고 이용하게 되는 과정을 지나 지구를 넘어선 우주적 공기이야기로 확장되는 이 책을 읽다보면 자연스럽게 다양한 과학정보와 과학자들을 만나게 되는데 때론 어렵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못다한 이야기' 의 에피소드와 책뒤의 <노트>코너에 모아진 자잘한 참고내용들을 통해 보충되면서 깊이있는 과학책임에도 그저 이야기처럼 술술 읽게 된다.​연대기적 역사책처럼 차근차근 시간순으로 설명되어지다 보니 읽기가 더 수월했는데 흥미로운 과학적 내용들도 인상깊었지만 나도 모르게 옆길로 빠지는 생각들도 개인적으론 이 책을 읽는 과정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재미였다. 


예를들면, 지구의 초기 공기 생성 이야기를 하면서 화산 분화 이야기를 풀어내는데 54p의 미국 세인트헬렌스산의 분화 사진을 보면서 그 날짜가 1980년 5월18일인 것을 보고 그때 미국의 화산이 폭발하지 않았다면 한국사회에 벌어진 사건에 대한 영향력이 달라졌을까 하는 뜬금없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양차대전에서 독일이 그런 선택들을 하게 된 배경에 '비료' 문제가 있었던 것을 읽으며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역사에 대해 새로운 국면을 발견한 기분이 들기도 한 그런 생각들.​아무래도 내가 좋아하는 역사 이야기들을 새로 발견할 때가 가장 재미있긴 했다. 예를들어, 독가스 연구를 한 독일과학자 하버를 전범으로 봐야할지 질소의 핵심인 암모니아 추출법을 알아냄으로써 식량생산을 획기적으로 늘려 수백만명의 생명을 기아에서 구해낸 과학자로 봐야할지라는 노벨에 대한 평가 못지 않게 어려운 딜레마, 그 유명한 과학자 라부아지에 가 프랑스 혁명때 단두대형을 당했다는 것, 자연발화에 대해 디킨스와 과학자들의 논쟁, 노벨이 여기저기 쫓겨다니며 연구를 해야 했던 시절의 사회적 분위기, 주기율표에 새로운 기둥을 추가한 과학자들의 도전 같은 에피소드들은 소설 못지않게 흥미진진하게 읽혔다.​


하지만 과학책이니만큼 새로운 과학정보들에 더 놀라워하며 읽게되긴 했다. 

예를들면, 오늘날 대부분의 곤충이 작은 이유는 공기중의 산소농도가 낮아졌기 때문이라던가, 마취제의 발견과정, 와트의 증기기관이 그의 사후 75년이 지날때까지 변하지 않은채 유지된 것이 얼마나 놀라운 것인지, 아르키메데스가 유레카를 외쳤던 상황에 대한 과학적 상황 재연은 전해지는 이야기와 다르다는 것, 지구의 크기를 사과에 비교한다면 대기층은 사과 껍질보다도 훨씬 얇다는 사실 등등은 어려운 과학정보들 보다 재미난 깨알정보로 내게 더 친숙하게 다가왔다.​


하지만 사실 모든 과학책들의 결말은 지금 현실을 바탕으로 한 미래를 예상하는데 초점을 두기 마련이다.

1600년에 살던 사람이 18세기 초의 세계를 보더라도 그다지 큰 이질감을 느끼진 않았을 것이다. 심지어 19세기 초의 세계조차 전혀 다른 세상처럼 느껴지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거기서 100년을 훌쩍 건너뛰어 20세기 초로 오면 충격을 금치 못했을 것이다. (중략) 1600년에 살았던 사람들이 들이마셨던 공기는 오늘날 우리가 들이마시는 공기와 똑같지 않았다. 산업 발전은 공기의 화학적 조성을 변화시켰다. (중략) 지금까지 이 책은 대기가 인간을 어떻게 변화시켰는가에 초점을 맞춰 이야기를 전개했다. 이번에는 그것을 뒤집어 인간이 대기를 어떻게 변화시켰는지 살펴보기로 하자. (p. 309)


3부를 시작하는 저자의 글을 읽으며 나는 이 책이 무척 극적으로 구성된 과학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별생각없던 공기에 대해 흥미를 유발하더니 역사적으로 차근차근 이해의 과정을 밟아오며 중요성을 각인시킨 후 이렇게 중요한 공기에 대해 최근 200년간 인간의 산업 발전이 어떤 해를 끼쳤는지 설명하는 것을 읽으면 몰랐던 때보다 확실히 더 충격적으로 현실을 깨닫게 되는 효과가 있었다.​


과거 무분별한 핵실험으로 인한 방사성 원자들을 아직도 우리가 들이마시고 있고 여러가지 방식으로 그 낙진의 후유증을 처리하고 있다는 것은 생각지도 못했던 내용이었는데 '1950년부터 1963년 사이에 일어난 대기권 핵실험이 공기 중의 탄소-14의 양을 약 두 배로 늘렸다는 사실을 생각해보라.(중략) 이렇게 늘어난 농도는 아직 정상으로 돌아가지 않았으며, 앞으로도 수천 년 동안은 계속 그럴 것이다. 그 결과로 우리는 이전보다 암에 걸릴 확률이 더 높아졌는데, 핵실험 금지 조약이 체결된 뒤에 태어난 사람도 그렇다. (p. 341)' 같은 내용은 대기오염이 그저 산업때문만이 아니었구나 싶어서 크게 놀랐다.​냉전시대의 UFO 목격담에 얽힌 모굴 계획 이야기는 군사기밀이 어떻게 감춰지는가에 대해 여러 생각을 하게 했고, 기체 분석만으로 다른 행성의 생명체 유무를 예상할수 있다는 이야기는 칼세이건의 코스모스에 머물러 있던 내 상식을 업그레이드 시켜주긴 했는데 왠지 기분은 씁쓸했다.

 '이 접근법으로는 1905년 이전의 인류는 전혀 발견할 수가 없고, 따라서 주민이 전신 비슷한 기술을 사용하지 않는 행성은 완전히 놓치게 된다. 게다가 현재의 추세가 계속되어 무선 방송의 비중이 점점 줄어들면, 지구 자체도 100~200년 안에 대체로 '전파 침묵' 상태가 될 가능성이 있으며, 따라서 먼 곳에서는 지구에 문명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전혀 알아채지 못할 것이다. 다른 행성의 문명도 이와 비슷한 패턴을 따를 가능성이 있으므로, 우리가 그 문명을 도청할 기회의 창은 아주 좁을 것이다. (p. 419)'


이 책 전체를 걸쳐 우리는 매초 우리 폐 속을 드나들면서 주변에 떠도는 수백만, 수십억, 수십해 가지의 이야기들을 살펴보았다. 우리가 단 한번 들이쉬는 숨 속에도 세계의 모든 역사가 들어 있을 수 있다. 따라서 다른 행성으로의 여행은 아주 작은 규모에서이긴 하지만, 그 이야기들을 조금 더 오래 살아남게 할 것이다. 먼지는 먼지로, 기체는 기체로. (p. 437)


우리가 마시고 있는 물은 지구에서 순환되는 재활용된 물이고 우리가 숨쉬고 있는 공기는 지구에서 순환되는 재활용된 공기이다. 따라서 과거에 어떤 역사적 인물들의 숨이 지금 우리의 폐 속을 지나갔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렇게 생각하면 왠지 한모금의 숨이 때론 찝찝하기도 느껴질수도 있고 때론 숭고하게 느껴질수도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누구의 마지막 숨이 되었건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은 계속 숨을 쉴 것이고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공기에 대해 좀더 주의를 기울여봐야 한다는 것이다. 그 공기는 지금 당장 우리를 숨쉬게 하기도 하지만 우주에서의 우리존재를 설명해주기도 하다는 것을 생각하면 대기오염이나 기후변화에 대해 좀 다른 측면으로 공기의 소중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쉽게 읽히는 책은 아니었지만 놀라운 과학책이었다.

카이사르의 마지막 숨
샘 킨 / 해나무
0
1
댓글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