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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어떻게지내요?
키얀티
2021-09-13 02:36:18



어떻게 지내요,

우리는 코로나19라는 바이러스라는 새로운 국면에 맞닥뜨리면서 많은 것들과 작별을 고해야했다.

여행을 시작으로 일상 속 지인들과의 모임, 취미생활 등 너무 당연하게 누려서 그 소중함을 잘 알지 못했던 것들 포함.

지인들과의 안부도 이제는 너무 당연스럽게 카톡같은 메신저 혹은 이메일, 그 외 등으로 주고 받고는 한다.

코로나가 터진 지도 꽤 되었으니 그간의 공백들을 '어떻게 지내요?' 라는 물음으로 대체하는 일도 많아진다.

이 책도 사실 그런 책인줄 알았다.

책 표지도 카페에서 티 타임을 가지며 누군가와 마주하고 있는 그런 표지라서.

그리고 이야기는 전혀 다르게 흘러간다.

말기암에 걸려 특정도시에서 치료받고 있는 '나'의 친구와 그 지역에서 강연을 하는 남자.

책은 기존의 가치관들과 대립되는 새로운 가치관,지금까지의 상황, 미래에 대한 전망 등을 이야기로 잘 녹여냈다.

p.15

다 끝났다고 그가 다시 말했다. 수 세대를 거쳐 우리를 지탱해온 믿음과 위안도 이제 더는 없고,

개개인의 지상에서의 삶은 어김없이 끝난다 할지라도 우리가 사랑했던 것, 우리에게 의미가 있었던 것은 계속 이어지며,

우리가 속한 세상은 지속되리라는 앎도 이제 더는 없습니다. 그런 시대는 끝났습니다.

우리의 세계와 우리의 문명은 지속되지 못할 겁니다. 이 새로운 앎을 지닌 채로 우리는 살아야 하고 죽어야 합니다.

이 뒤에도 대량살상무기의 생산, 병적으로 자기 밖에 모르는 자들이나 허무주의자, 양심/공감능력이 없는 사람들이 주도하는 현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것이 없을 것이고 동물계 전체가 파국을 맞을 것이라는 그런 내용이 이어진다.

이 부분은 책 속에서는 남자의 강연인듯 쓰여졌지만 단순한 강연같지가 않았다.

어떻게 지내요 라는 제목이 연상되면서 이 부분에서는 (현재 우리 사회가 이러합니다. 당신은) 어떻게 지내요 라는 생각이 들었다.

p.23

어마어마한 규모의 고통이 우리 앞에 놓여 있다는 것을 부정하거나 그것을 모면할 수 있다고 생각해봐야 아무 소용없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우선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 하나는 우리는 계속 아이들을 낳아야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중략)

분명히 말하지만, 지금 임신한 여성들이 모두 임신중지를 고려해야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당연히 그런 말이 아닙니다.

제 말은 수 세대 동안 인류가 해왔던 식의 가족계획이라는 개념을 제고할 필요가 있다는 겁니다.

(이 말을 한 남자는 자신의 손주 탄생을 기뻐한다.)

단순히 임신 뿐만아니라 가족이라는 개념이 과거와는 많이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개인주의가 심화되고 핵가족화를 넘어 1인가구를 추구하는 현 시점에서는

과거의 가족에 대한 가치관과 지금의 가족에 대한 가치관이 상충하는 사례가 왕왕 있다.

책 속에서도 (조금 다르게 볼 수도 있으나 나는 이 강연과 책의 전반적인 내용을 연결지어 봤기에) '나'의 친구 딸이 나온다.

'나'의 친구는 항암치료를 받지 않겠다고 하고 친구의 마음을 돌리려 하지 않는 한 사람이 나온다.

내 친구 딸래미다.

p.41

친구의 딸은 그저 이렇게 말했다. 엄마가 결정할 일이죠.

p.42

서로에게 뼈 있는 말을 얼마나 많이 던졌는지 그 뼈를 다 모으면 골격 하나는 충분히 나올 거라고. 친구가 농담 삼아 말했다.

p.49

나는 정서적으로 표류난민이다.

p.51

엄마가 결정할 일이죠. 그게 도대체 할 말이니. 친구가 말했다.

엄마가 결정할 일이죠. 끝. 별일도 아니라는 듯이. 자기랑 아무 관계가 없다는 듯이.

난 친구의 손을 잡고 위로해보려 했다. 누구나 말을 잘못 할 때가ㅡ

넌 애를 안 낳기를 정말 잘한 거야. 친구가 말했다.

친구의 딸은 어마어마한 싸가ㅈ..아니 개인주의 성향이 두드러진 캐릭터로 묘사된다.

이건 뭐 엘렉트라 콤플렉스인가 싶을 정도로 자신을 버리다시피 하고 간 아버지는 열정의 대상으로 삼고

정작 자신을 낳고 길러준 엄마와 조부모에게는 굉장한 적대감을 표한다.

기존의 엄마와 딸이라는 관계성을 생각하면 응? 하게되지만 지금 시점에 와서는 다르게 생각하면 그럴 수도 있겠다 싶다.

친구 역시 남겨질 딸에 대한 걱정을 하기보다는 담담하게 자신이 죽어가고 있음을 인식하고 받아들인다.

더 이상의 치료로 생명을 늘이기보다는 '웰 다잉'을 추구하고 자기의지로 끝내고자 안락사 약을 준비하는 친구의 곁에서

함께 해주는 사람 역시 가족이나 다른 누구도 아닌 '나', 친구다.

p. 149

이 세상에 태어날 때는 적어도 둘이 있지만, 떠날 때는 오로지 혼자라고 누군가 말한 적이 있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찾아오지만, 그럼에도 그것은 모든 인간 경험을 통틀어 가장 고독한 경험으로,

우리를 결속하기보다는 떼어놓는다.

p.166

누가 한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쩌면 헨리 제임스일 수도, 아닐 수도 있는데, 세상에는 두 종류의 인간이 있다고 했다.

고통받는 사람을 보면서 내게도 저런 일이 일어날 수 있어, 생각하는 사람과 내게는 절대 저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거야. 생각하는 사람.

첫 번째 유형의 사람들 덕분에 우리는 견디며 살고, 두 번째 유형의 사람들은 삶을 지옥으로 만든다.

p.169

" 그런데 대부분 그렇겠지만 나도 남들이 날 어떻게 생각하나 신경 쓰느라 너무 많은 시간을 허비했어.

내 이미지. 내 평판. 그런 게 정말 그렇게 중요한 건지 잘 모르겠어. "

p.183

" 무슨 범죄자도 아닌데 도대체 왜 이런 일을 겪어야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어.

죽음을 앞둔 사람들은 스스로 목숨을 끊을 권리가 있어야 하는 거 아니야?"

p.211

그것이 친구가 스스로 마련한 끝이었다.

단순한 줄거리는 암으로 죽어가는 친구 곁을 지켜주는 서술자 '나'와 친구의 마지막 여행기이자

서술자 '나'의 주변인들에 관한 책이지만 그 안의 내용들이 제각각 많은 생각들을 자아낸다.

안락사로 자신의 죽음을 선택하는 (선택할만한 상황에 놓여있기도 했으나) 친구와

그런 친구의 죽음을 존중하고 그 곁을 지켜주는 '나' 그런 나에게 딱 너답다며 미친 짓이라고 비판하는 전 애인(이자 강연자)

일기를 쓰지 않은 걸 서술자인 '나'는 후회하지만 책에서도 나와있듯 단순한 글로 표현할 나날들이 아니었다.

어떻게 지내요? 는 원어인 프랑스어로 당신의 고통은 무엇인가요? 이듯

친구와 나라는 개인적인 시선에서 점점 확장되어 인류가 감내해야할 고통까지도 우려의 시선을 담아낸 소설이다.

호흡이 길고 루즈하다는 느낌도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럼에도 읽을만한 가치가 있는 책이다.

모두의 생각은 다를 것이다. 작중 인물에게 이입하여 이건 아닌 것 같아, 나도 이런 상황이라면 이렇게 했을 것 같다.

생각하며 읽는 것 또한 이 책의 재미를 더하는 방법이겠다.

다소 오래걸렸지만, 흔히 말하는 '재미'와는 또 다른 의미로 재밌었다.




어떻게 지내요
시그리드 누네즈 / 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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