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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테디 웨인-아파트먼트
버니
2021-11-08 18:51:18

1996년 뉴욕, 소설가의 꿈을 품고 컬럼비아대학 순수예술 석사과정의 문예 창작 프로그램을 수강 중인 나.
그리고 문예 창작 워크숍의 합평 수업에서 유일하게 '나'를 지지해 준 동료 수강생 '빌리'.

 

그 일을 계기로 나는 빌리와 급격하게 친분을 쌓게 되면서 그의 문학적 재능과 매력에 흠뻑 빠져들게 된다. 그가 바텐더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가게 '이글스 네스트'도 방문하게 되면서 알게 된 지 일주일 만에 자신의 아파트의 방 하나를 내어주고 하룻밤을 재워주기도 한다. 그리고 대고모 소유의 남들이 부러워할법한 불법 전대 아파트의 사정을 술술 이야기하는 한편, 그의 남다른 사정도 알게 된다.

 

현재는 비록 불법 전대지만, 대고모 소유의 아파트에서 12개월만 거주하면 조만간 합법적으로 소유권을 이전 받을 수 있다. 심지어 그 아파트는 맨해튼에서 좋은 입지조건을 가지고 있으며 집세는 싸고, 평수는 넓다. 또한 이혼했지만 아버지는 종합 격려 세트처럼 2년간의 수업료뿐 아니라, 집세와 생활비까지 지원해 주시기로 한 중산층에서 별 어려움 없이 살고 있는 나.

 

반면, 똑같은 이혼가정이지만 아버지로부터 전혀 지원을 받을 수 없으며 현재 아르바이트로 일하고 있는 '이글스 네스트'의 지하 방 한 칸에서 겨우 쪽잠을 자며 근근이 버티고 있는 '빌리'. 이대로라면 다음 학기에는 모두 다 그만두고 중서부로 돌아갈 형편에 놓여있다.

 

그렇게 너무도 달랐던 둘은 알게 된 지 겨우 2주 만에 아파트에 같이 들어와 살자는 '나'의 제안으로 '빌리'는 무료로 함께 생활하게 된다. 그렇게 처음에는 사려 깊은 우정과 친밀감을 형성해 가며 가깝게 지내게 된다. 혹평만 가득한 '나'의 글에 대해 '빌리'는 아낌없는 충고와 지지를 해주고, 매력적인 '빌리'의 소설을 통해 '나'는 자극과 함께 그가 잘 모르는 여러 정보와 지식들을 알려주면서 우정을 쌓아간다. 어느덧 그들은 늘 함께 하는 동료이자 선의의 경쟁자로서 사적인 가족행사에도 함께 참여하고 친구들의 모임에도 함께 하면서 시간을 보낸다. 

 

그렇게 약 1여 년을 보냈던 그들이 그해 겨울, '빌리' 사촌의 결혼식이 있어 펜실베이니아로 여행 겸 함께 떠나게 된다. 그곳에서 엑스터시 약을 먹고 여자들과 밤을 즐기게 되는데 그렇게 여자 둘과 나, 그리고 빌리가 한데 엉켜 즐기다가 문득 '내' 피부가 '빌리'의 피부에 닿는 순간 정색하듯 빌리는 그 방을 떠나 우리가 묵었던 방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나'와 '빌리'의 사이는 점차 서먹해지기 시작한다. '나'는 정확히 어떤 이유로 '빌리'의 태도가 갑작스레 변한 건지 이유도 모르고 그저 마약에 취해 실수처럼 닿았던 접촉 때문이라고 막연히 생각하고 사과한다. 하지만 그 이후로도 '빌리'와 '나'의 사이는 좀처럼 예전 같지 않지 않고 점점 멀어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무상으로 방을 대여해 주는 대신 미안함과 고마움에 '빌리'가 하기로 했던 청소를 1주, 2주 건너뛰게 되고 주에 몇 번 '빌리'가 직접 만든 음식으로 함께 했던 저녁도 어느새 없어진지 오래다. 같은 집안에서도 각자 따로 생활하는 게 이젠 일상이 된 하루 속에서 유일하게 자신에게 격려와 위안을 줬던 합평 수업에서 마저도 그는 '나'에게 아무런 피드백을 주지 않는다. 그럼에도 끝까지 '빌리'와의 관계를 되돌리고 싶었던 '나'는 그의 아르바이트 가게에도 간간이 방문하고 그의 친구들과도 어울리며 여전히 그의 호구 노릇을 톡톡히 하며 지낸다. 

 

그러다 그는 불안해지기 시작한다. 조만간 빌리가 떠날 것 같은 불안감, 다시 예전과 같이 혼자 외로웠던 상황으로 변화되는 것을 피부로 느끼며 한번 맛본 매력적인 '빌리'라는 존재를 잃어버릴까 봐 극도의 공포감과 불안감을 느낀다. 그렇게 끝으로 몰린 나는 학교 장학금 후보 작품으로 출품할 <노 맨스 랜드>를 준비하던 그의 글이 담긴 컴퓨터와 백업본, 그리고 인쇄본까지 모두 훔쳐 '빌리' 몰래 내다 버리는 행위를 저지른다. 그리고 누군가 집에 침입하여 훔쳐 간 것처럼 꾸미기 위해 자신의 노트북과 비디오 플레이어까지 포함한 몇 가지를 함께 강에 버리고 빌리의 망치로 현관문에도 누군가 침입한 흔적을 남겨둔다. 그러고는 알리바이를 만들고 모른척하며 여느 때처럼 그에게 노트북을 새로 사주겠다며 달랜다. 하지만 '빌리'는 그럴 순 없다며 일전에 '내'가 아무렇지 않게 술술 불었던 아파트와 대고모, 그리고 보험 외에도 집과 관련된 중요한 내용들을 지적하며 보험금을 받아 도난당한 물품들의 보상을 받자고 나를 설득한다. 

 

어쩔 수 없이 나는 대고모에게 사정을 설명하고 보험처리를 위해 낡은 빌리의 컴퓨터와 그가 찍힌 사진을 증거물로, 그를 내세워 경찰과 보험사에 해당 내용을 신고한다. 불법 전대 상태이기에 보험사와 경찰서에는 알리고 싶지 않았지만 너무 강경하게 이야기하는 빌리에게 의심을 사지 않기 위해 그는 어쨌든 수습을 해야 했고 사전에 대고모에게 불법 전대 부분에 문제가 되지 않는지도 확인 후 도난 신고로 진행한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그는 불법 전대 내용이 들통나고 법정으로부터 퇴거명령을 받게 되고 큰 벌금까지 받게 된다.

 

알고 보니 이는 '빌리'가 만든 상황이었으며 경찰서에서 신고 내용에 대해 조사하러 왔을 때 외부 침입 현장이 아닌 내부 소행이라는 말에 그동안 나에게 들었던 내용들을 술술 그대로 밝혀버린 것이다. 빌리는 결국 '나'와 멀어진 후 함께 어울리던 친구 두 명과 함께 따로 방을 구해 나가게 되었고, 나는 2주만 기다리면 합법적으로 '나의 것'이 될 뻔했던 아파트도 잃고 부모님과 대고모의 신뢰도 잃었으며, 아버지가 지원해 주기로 한 생활비와 집세, 생활비 그 외에도 청구된 벌금까지 갚아나가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나'는 이 일로 모든 것을 잃었다.

 

'빌리'는 오래된 컴퓨터와 파일, 인쇄본은 비록 잃었지만 예전에 '내'가 '빌리' 몰래 친구를 통해 건넸던 <노 맨스 랜드>가 출판사로부터 긍정적인 연락을 받으면서 그 원고를 학교 장학금 출품작으로 제출할 수 있었고, 예상했던 대로 그는 장학금을 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돈으로 새로운 집도 마련하고, 중고 컴퓨터도 새로 장만하는 등 '빌리'의 삶에 숨통이 트였다. 그렇게 '나'와 '빌리'의 인연은 끝났다.

 

반면, 중산층에서 자라 별 어려움 없이 학교생활을 했던 '나'의 인생은 바닥을 쳤다. 누구나 부러워할 맨해튼의 아파트는 사라졌고, 학교는 휴학을 했으며 생활비와 벌금, 등록금을 벌기 위해 다시 예전에 했던 아르바이트 교정작업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컬럼비아대학의 사람들과도 소식을 끊었다.

 

빌리는 마지막 떠나기 전 '우리'에게 아파트를 잃어버린 것이 좋은 일일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과연 그럴까?
'빌리'는 처음부터 소유했던 것이 없던 이였다. 잃어버린 것은 오로지 '나' 하나였던 것이다.

 

처음부터 둘은 너무도 상반되는 환경과 상황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더 급진적으로 친해지고 매력을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아낌없이 그에게 경제적 지원과 마음을 쏟았다. 내가 가지고 있지 못했던 남성성, 잘생긴 얼굴과 몸, 글을 쓰는 능력, 매력적인 모습을 지닌 '빌리'와 어울리며 외로움과 자기혐오적이고 괴짜였던 '나'를 잊을 수 있었다. 그래서 그가 떠나는 것이 그토록 무서웠는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빌리는 '내'가 아니었으면 경제적인 상황 때문이라도 그대로 한 학기 뒤 이곳을 떠났을 것이다. 그랬다면 나는 지금 잃은 모든 것을 잃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사실상 말 한마디에 기대어 '나'는 모든 것을 내어주었는데 그는 그것들을 모두 받고 그의 길을 유유히 떠났다.

 

소설을 읽다 보면 '나'의 진짜 모습을 감추고 타인에게 무난하게 보이기 위해 누군가의 말과 행동을 따라서 한다는 내용이 중간중간 서술된다. 나는 아웃사이더였고 외로웠으며 괴짜였다. 남자들 속에서 이루어지는 대화나 문화가 나와는 전혀 맞지 않았고 즐겁지 않았다. 기회가 되어 여성과 관계를 맺을 때도 쉽게 되지 않았고 긴장감으로 땀이 많이 나는 '나'는 아기처럼 부드러운 손을 가지고 있었다.  

 

 

이는 몇몇 문장에서 확인해 볼 수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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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 전형적인 괴짜야"
그때 스위치가 탁 눌렸고, 나는 맨정신일 때에도 자주 찾아오는 생각과 함께 내 마음의 지하 복도로 도망쳐 들어갔다.
(...)
나는 괴짜였던 것이다. 하지만 나는 '전형적인' 괴짜조차도 못 되었다.
(...)
이미 소외된 하위문화 속에서 또 변두리에 머무르는 것은 그것과는 전혀 다른 데다 그냥 외로웠다.

 

250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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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가 사람들로부터 점점 더 멀어지고 있다는 걸 거의 혼자가 된 뒤에야 알아차렸다.
(...)
내가 깨달은 바로는, 고독은 일단 그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나면 그렇게 나쁜 것만은 아니다.

 

299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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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마 스스로가 타인과 같지 않아서, 내성적이라서 남성성, 권력, 계층 등과는 거리가 멀어서 항상 긴장하고 혼자 외로웠는지도 모른다. 이혼한 부모님, 가깝지 않은 친척 등 어디에도 마음을 줄 수 없었던 그가 한순간 '빌리'에게 마음을 빼앗긴 것은 어쩌면 그가 기적처럼 그 마음을 위로해 주고 어루만져 준 유일한 존재였기 때문이 아닐까? 빌리와 지냈던 일 년간은 마치 꿈을 꾼 듯 자신이 그동안 해보지 않았던(혹은 못했던) 일들을 경험한다. 마약을 하고 친구들과 스포츠를 관람하고 여자들과 어울려 놀고 흔히 남성성으로 대표되는 모습들 속에서 익숙하지 않지만, 즐겁지는 않았지만 '나'는 외롭지 않았다. 그들은 내적으로 파고드는 자기 의심이나 자기혐오 없이 그저 적당히 어울리고 즐거우면 그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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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 다 자기 의심이나 자기혐오 같은 건 불가능한 사람들로 보였다.

179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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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안전장치 없이 기쁨을 향해 열려 있고, 들어가 거닐 수 있는 정원들의 연속이지 피해야 할 가시들의 연속이 아닐 것이다.

196~197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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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나' 부드러운 손이 '빌리'에게 닿는 순간 꿈은 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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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네시가 되자 아무런 장식이 없는 벽, 바스락거리는 침대 시트, 강렬한 담배 냄새가 더 이상 미국적인 혈기왕성함을 낭만적으로 구현해놓은 사물들로 다가오지 않았다. 그 방은 그냥, 머무를 다른 곳이 없는 사람들을 위한 침울한 중간 기착지였다.

200~201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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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평 수업에서 항상 혹평을 받던 이유는 무엇일까? 빌리는 나에게 무언가가 빠져있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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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소설을 쓰는 기술에 대해서는 누구 못지않게 속속들이 꿰고 있단 말이야" 
"수업 시간에 최고로 분석적인 피드백을 주는 사람이기도 하고. 근데 내 생각에 사람들은 너한테 뭔가가 빠져 있다는 걸 지적하고 있는 것 같거든"

221페이지 中 빌리가 한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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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한테서 뭔가 빠져있다고?"
"아니면 너의 어떤 부분이 네 소설에서는 빠져 있다고 하는 게 더 맞겠다" 빌리가 말했다. "네 글에는 네가 정말로 어떤 사람인지가 항상 드러나지는 않잖아"
(...)
"약간 무언가로부터 도망치려는 느낌이라는 거야"

222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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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이 그리는 윤곽선, 그리고 그 선 안에서 맞춰 움직여야 할 것 같은 편견. 그것은 내 안에 나와 계속적으로 부딪혀 허공을 맴도는 일상의 반복.
'나'는 그래서 삶이 공허하고 외로웠고 괴짜스러웠을 것이다. 적어도 타인과 같지 않았기에..

 

1996-1997 일년간의 꿈같던 시간에 빠져있던 나는 먼 길을 돌아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상실감을 맛봤고 소설을 쓸 수 있다는 생각은 버렸다. 사람들과는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지내며 지금 하는 일에 만족하며 적당히 잘 지낸다. 그리고 여전히 혼자다.

 

그 이후로 한 번도 만나본 적은 없지만 출간된 '빌리'의 책을 통해 그의 소식은 간간이 알 수 있었다. 스물아홉 살 그는 <노 맨스 랜드>를 출간했다. 삼 년 뒤에는 단편소설집이 출간되었고 어느 대학의 부교수로 재직 중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 이후 나온 장편소설 표지에는 그가 같은 대학에서 이제 교수가 되었으며 아내와 아이들과 함께 살고 있다고 적혀 있었다.

 

그 시대 사회적 통념상 동일한 남성성에 대한 관념을 가지지 못했기에 자기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이 부족했던 '나'는 사실, 약자와 소수자를 배려할 줄 알고 사회와 문화를 예민하게 감각하고 해석할 줄 아는 꽤 괜찮은 사람이었다. 그 당시에 외로움과 고독이라는 것에 갇혀 '진정성'에 대해 자신감이 없었던 '내'가 '빌리'를 만나면서 사람에 대한 기대가 실망으로, 실망이 불안으로, 불안이 다시 그럼에도 잃고 싶지 않은 마음들을 겪으면서 가장 연약하고 나약했던 나의 모습을 보고 겪었다. 그리고 자신의 어리석음과 동경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다.

 

시간이 지난 이제는 온전히 깨달았다. 혼자라는 것이 고독이라는 것이 그렇게 나쁘지 만은 않다는 사실을, 그리고 위축되어 있지 않은 나, 껍질을 깨고 나온 내가 '나'로써 사는 것 그것만큼 중요한 것이 없다는 것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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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디 웨인 / 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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