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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환상문학 <피라네시>
2021-11-23 11:26:51

빛을 발하는, 꿈 같은 모험의 시간

당신을 아름답고 기이한 세계로 초대한다

'데뷔작으로 휴고상을 수상한 SF 천재작가의 16년만의 귀환' 이라는 홍보문구에 혹했다. SF 소설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데뷔작부터 천재작가소리를 들은 이의 작품이 무척 궁금했다. 휴고상과 SF 라는 단어에 초점을 두고 읽어선지 책을 몇장 읽지도 않았는데 고개가 갸웃거려졌다. 휴고상에 대해 검색해봤다. 효고상은 과학소설과 환상문학에 주는 상이라고 나왔다. 아하... 이 작품은 SF나 과학소설이 아니라 '환상문학' 이었던 거다.

【 달이 북쪽 셋째 홀에 떴을 때 아홉째 현관에 들어가다 - 앨버트로스가 남서쪽 홀에 온 해 다섯째 달의 첫날 기록】 이라는 기묘한 시공간 개념으로 시작하는 이 소설은 익숙해지는데 좀 시간이 걸렸다. 스스로를 '워낙 방대한 작업이어서 때로는 좀 아찔해지지만 과학자이자 탐험자로서 나는 세상의 눈부신 아름다움을 목격할 의무가 있다. (p. 21)' 며 홀들을 돌아다니고 기록하는 '나'의 시간들을 읽고 공간들을 상상하다보면 내 머릿속도 함께 아찔해지는 것이다.

'서쪽으로는 구백예순째 홀, 북쪽으로는 팔백아흔째 홀, 남쪽으로는 칠백예순여덟째 홀까지 가보았다. (p. 20)' 라는 공간과

'현재 살아 있는 사람은 나 자신 그리고 나머지 사람뿐 (p. 23)' 라는 등장인물

'피라네시. 그것이 그가 나를 부르는 이름이다. 이상한 일이다. 내가 기억하는 한 그것은 내 이름이 아니기 때문이다. (p. 25)' 라는 제목에 대한 의미까지 읽고나면 이 소설의 배경이 지구가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하게 될 수도 있지만 포인트는 그게 아니다. 내 이름이 아닌 것으로 불리면서도 내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는 '나'의 독백을 읽어가면서 한 사람의 정신세계에 대해 얼만큼 공감하게 되는가, 거기에 '환상'의 포인트가 있었다.

이제까지 일지는 공책 아홉권을 채웠다. 이것이 열째 공책이다. 모두 번호가 붙어 있고 대부분은 기록이 담긴 날짜가 적혀 있다.

1번은 '2011년 십이월에서 2012년 유월까지' 라고 되어 있다. 2번은 '2012년 유월에서 2012년 십일월까지' 라고 되어 있다. 3번은 원래 '2012년 십일월'이라고 쓰여 있었지만, 언젠가 그 위에 줄을 긋고 '흐느끼고 울부짖던 열두째 달의 서른째 날에서 산호 홀을 발견한 해 일곱째 달의 넷째 날까지' 라고 고쳐져 있다. (p. 30)

그러니까 이 소설의 시공간은 SF적인 것이 아니었다. 2012년 십일월에 무슨 일이 일어났다. '나'의 시공간을 뒤바꿀만한 어떤 일이. 그래서 '흐느끼고 울부짖'을 만한 사건이. 그리고 지금 쓰고 있는 공책은 열째 공책이라는 건 한권당 대략 6~7개월 정도 쓴것으로 보이니 현재시점은 5~6년이 지난 때라고 계산할 수 있다. 그러니까 2017년~2018년 정도. 환상문학을 이렇게 현실기준으로 계산하는 것이 걸맞지 않을수도 있지만 어쩔수 없다. 나는 그래야 이해가 되는 사람이다;;; 이렇게 계산하고 보니 이제 이 소설이 스릴러적으로 읽히기 시작한다. 이제 좀 호기심이 샘솟으려 한다. 환상문학이 어렵다면 나처럼 스릴러로 읽어도 될 작품인 것이다.

"오늘은 의식을 거행할 텐데, 자네가 여기 있고 싶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군"

의식이란 예법에 따라 시행하는 마법인데, 나머지 사람은 그 방법으로 위대하고 은밀한 지식이 이 세상 어디에 붙잡혀 있든 거기서 풀려나 우리에게 오게 하려는 생각이다. 이제까지 우리는 의식을 네 번 거행했고 매번 조금씩 형식을 바꾸었다. (p. 68)

"헌데 여기엔 힘이 있는 게 하나도 없어. 살아 있는 것조차 아무것도 없잖아. 그냥 다 똑같은 황량한 방들이 끝도 없이 늘어서 있고 새똥으로 뒤덮여 부식되고 있는 조각상들만 가득하니" (p. 74)

'나머지 사람'은 피라네시와 화요일 금요일에 정기적으로 만나 대화를 나눈다. 때론 나머지사람이 의식을 거행하는데 피라네시는 네번 이라고 했지만 그가 기억하지 못하는 한번이 있었으므로 5번의 의식이 된다. 앞에서 시간계산했던 방식대로 추측하자면 '나머지 사람'은 일년에 한번정도 의식을 치루는 것 같다. '이 세상 어딘가에 '위대하고 은밀한 지식'이 있는데 그것을 발견하면 어마어마한 힘이 생긴다고 믿는다. (p. 24)' 그러니까 '나머지 사람'은 '위대한 지식' 과 '어마어마한 힘'을 갈구한다. 하지만 '집은 헤아릴 수 없이 아름답고, 무한히 자애롭다. (p. 19)' 라고 홀들을 생각하는 피라네시에 대비해 '황량한 방들' 과 '새똥'으로 바라보는 '나머지 사람'에겐 처음부터 불가능한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피라네시는 자신이 깨달은 것을 '나머지 사람'에게 말해주려고 하지만 '나머지 사람'은 무시한다.

"아 그럴게요! 신발만 있으면 아무 문제 없을 거예요. 세 시간 반이면 백아흔두째 홀에 도착할 거예요. 길어도 네 시간이면 돼요" (p. 80)

이백에 가까운 홀까지 가는데 네시간 정도라면 처음에 나왔던 구백예순째 홀까지는 20시간이 좀 안 걸린다는 계산이 나온다. (환상문학을 읽으면서 '환상'을 공감하지 못하는 나로서는 이런식의 현실 계산이 정말 어쩔 수 없다;;; 내가 이해하는 방식이 이랬나 보다;;;) 그러니까 피라네시가 머물고 있는 공간은 하루이틀이면 다 둘러볼 수 있는, 조수간만의 차가 있는 파도가 치는, 각 홀마다 조각상들이 많은, 해안 동굴들의 집합체 라고 정리될 듯 하다. '미궁' 이다!

왜 집이 나머지 사람에게 훨씬 다양한 물건을 제공하는지 문득 궁금해진다. 그에게는 침낭이니 신발이니 플라스틱 그릇이니 치즈 샌드위치, 공책, 크리스마스 케이크 등을 주면서 내게는 거의 물고기만 주니까. 어쩌면 나머지 사람이 나만큼 자신을 보살피는 데 능숙하지 않아서 그런지도 모른다. 나머지 사람은 낚시하는 법을 모른다. 그는 결코 (내가 아는 한) 해조를 모아서 말리고 저장해 불을 피우거나 맛난 과자를 만들지 않는다. 물고기 가죽을 보존해서 그걸로 가죽(쓸모가 많다)을 만들지도 않는다. 집이 그에게 이런 것들을 제공하지 않는다면, 그가 죽는 것도 있을 법한 일이다. 아니면 (이쪽이 더 그럴듯한데) 내가 그를 돌보는 데 상당한 시간을 할애해야 할 것이다. (p. 84)

피라네시의 일상은 일종의 로빈슨크루소와 비슷하다. 해안동굴에서 물고기와 해조류로 사는 삶의 방식을 터득했다. 하지만 나머지 사람은 전혀 그렇지 않다. 그런데 나머지 사람에겐 항상 물자가 풍부하다. 피라네시는 집이 모든 것을 제공해준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프레임에서 피라네시는 나머지 사람이 자신과 동일한 '집'에서 살고 있는 사람이 아니란 것을 생각할 수 없다. 하지만 피라네시가 바보는 아니다. 그는 시간개념이 정확하고 모든 홀을 기억하며 길을 잃지 않고 열악한 환경에서의 생존법을 스스로 터득했다. 다만 피라네시의 세상이 세계관이 달라진 것이다. 정작 본인은 그것을 몰랐지만.

"이번이 세 번째네. 패턴이 있어. 자네는 일 년 반마다 지식탐색을 그만두자는 생각이 떠오르는 듯해"

"이해가 안 가는데요, 제 기억력은 아주 좋다고요. 한번 가본 홀은 모조리 기억한다니까요. 칠천육백칠십팔 개에요"

"자네는 미궁에 관해서는 잊어버리는 법이 없지. 바로 그렇기 때문에 자네 도움이 내 작업에 그렇게나 중요한 것이고. 하지만 다른 일들은 그렇지가 않아. 게다가 자넨 시간을 놓쳐 버리네"

"뭐라고요?"

"왜 있잖나. 요일이나 날짜를 틀리는 거지"

"안 그런데요"

"자네의 시간 개념이 어긋나 있을 때마다 나는 몇 번이나 바로잡아 줘야 했네"

"무엇과 어긋나 있다는 거죠?"

"나와. 다른 모든 사람들과"

"그럼 왜 당신은 잊어버리지 않는 거죠?"

"난 대비를 하거든"

"저도 할 수 있는 방법인가요?"

"아니, 아니. 그렇게는 안 되네. 미안하군. 자네한테 이유와 원인을 시시콜콜 설명할 수가 없네. 복잡하거든. 언젠가는 얘기해 주지" (p. 102, 103 일부 발췌)

나머지 사람에 의하면 피라네시는 주기적으로 무언가를 기억하지 못한다. 때로는 시간 개념이 어긋난다. 그때마다 나머지 사람이 피라네시에게 다시 알려준다. 그럴때마다 나머지 사람은 의혹을 가질만한 단어들을 부지불식간에 내뱉곤 한다. 둘만 살아있다고 생각하는 피라네시에게 '다른 모든 사람들' 이라던가 '대비'라던가... 하지만 피라네시는 전혀 의혹을 가지지 않는다. 그저 자신이 홀들을 둘러보고 조각상을 감상하고 새들과 대화를 나누며 물고기와 해조류만으로 살아가는 삶을 유지한다.

"잘 듣게. 내게 한 가지 약속해 줬으면 좋겠네"

"물론이죠"

"미궁에서 누군가를 혹시라도 본다면... 자네가 모르는 사람말이네... 그 사람에게 말을 걸지 않을 거라고 약속해 주게. 반드시 숨어야 하네. 그 사람에게서 물러나게. 그 사람이 자네를 보지 못하게 해" (p. 110)

"그러면 정말 세상에 열여섯째 사람이 있는 거군요? 왜 한번도 그 얘기를 안 하신 거죠? 굉장하군요! 축하할 일이에요!" (p. 111)

그러다 상황이 변하기 시작한다. 파도가 들이치는 홀들에 조각상 들과 나머지사람 그리고 피라네시만 존재하는 세상이 전부 라고 생각했는데, 열여섯번째 사람의 존재가 등장했다. 나머지 사람은 숨으라 했고 피라네시는 축하할 일이라고 했다. 얼마후 피라네시는 한 노인을 만났지만 그는 나머지사람이 말한 열여섯번째 사람이 아니었다.

"사실 그 친구 생각은 전부 나한테서 온 거라네. 나는 내 세대에서 가장 위대한 학자였지. 어쩌면 다른 세대를 통틀어도 그럴지 모르겠구먼. 나는 이론을 세웠어 이것이... " 그는 홀을, 집을, 모든 것을 가리키려는 듯 양손을 벌렸다. "존재한다고 말이야. 그리고 그것은 사실이지. 나는 이곳에 오는 길이 있다는 가설을 만들었네. 길은 실제로도 있고, 그리고 나는 여기에 왔고 다른 친구들도 여기에 보냈네. 모든 것을 비밀에 부쳤지." (p. 129)

"결국 우리는 다들 끔찍한 대가를 치러해 했네. 내 대가는 감옥이었어. 그래, 맞네. 충격적이겠지. 전부 오해에 불과하다고 말할 수 있으며 좋겠지만 나는 그들이 주장하는 일들을 정말로 했네. 솔직하게 털어놓자면 그들이 주장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일을 했지." (p. 130)

"그랬지, 이 세상을 찾았지. 이 세계를 나는 '지류支流세상Dis-tributary World'이라고 부르네. 이 세계는 다른 세계에서 흘러나온 개념에서 만들어졌네. 이곳은 그 세상이 먼저 존재하지 않았더라면 존재할 수 없었을 거야. 아직도 그 처음 세상이 있어야 이곳이 존재할수 있는지는 나도 모른다네. 전부 내가 쓴 책에 있네만." (p. 131)

피라네시는 이 노인을 예언자라고 생각한다. 노인이 들려준 이야기들은 '나머지 사람'에 대한 이해 혹은 피라네시가 집이라고 여기고 있는 공간에 대한 이해를 도와주었다. 나머지 사람이 결코 이해하지 못했던 피라네시의 논리들을 수긍해주었다. 그리고 수많은 의혹들을 품게 했다.

"말해 보게. 케털리는 고대의 지혜까 아직도 여기 있다고 여기는가?"

"위대하고 은밀한 지식 말씀이신가요?"

"바로 그걸세"

"네"

"그리고 아직도 찾고 있고?"

"네"

"그것 참 재미있군. 절대 못 찾을 걸세. 여기에 없거든. 그건 존재하지 않는다네"

"어쩌면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자네는 그 친구보다 한결 총명하구먼. 그게 여기에 숨겨져 있다는 생각, 그것도 유감스럽지만 나한테서 얻은 것일게야."

"조각상들이 있는 이유가 다른 세상에서 이곳으로 흘러들어온 지식과 개념을 상징하기 때문인가요?"

"오래 머무를 수는 없네. 이곳에 머무르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너무 잘 알고 있으니 말이야. 기억 상실, 철저한 신경 쇠약, 기타 등등. 그렇지만 자네는 놀랄 정도로 논리정연하군그래."

"나는 그 친구가 밉네. 그 친구는 지난 이십오년 동안 자기 말을 듣는 사람이라면 누구 할 것 없이 모두에게 나를 중상하고 다녔어. 그래서 나는 여기 오는 법을 16에게 소상하게 말해 줄 걸세. 시시콜콜 말이네" (p. 132~135 부분 발췌)

'알겠지만 예전에 자네가 부탁했을 때 내가 오지 않기로 한 것을 후회하지는 않네. 자네가 나한테 쓴 편지 말이야. 그때는 자네가 시건방진 애송이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때 자네는 아마 그랬을 거야. 하지만 지금은... 매력적이군. 상당히 매력적이야. (p. 137)' 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노인은 떠났다. 아하! 닫힌 세계 라고 생각했던 피라네시의 '집'은 누군가 드나들 수 있는 곳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 외부와의 연결에 대해 피라네시는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 밖으로 나가볼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것보다 피라네시가 노인과의 대화를 되새겨보며 당황스러웠던 것은 자신이 기억하지 못하고 있는 자신에 대해서였다. 자신이 기억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있을수도 있다는 의혹이었다. 피라네시는 그동안 열심히 기록하기만 했던 자신의 공책들을 첫권부터 읽어보기로 한다.

자신의 기록이 분명함에도 자신의 공책에 있는 내용들은 실로 놀라운 것이었다. 이제 본격적으로 스릴러적 사건추적 분위기가 형성된다. 나에게 이 소설은 이제부터 시작인 셈이었다. 소설의 3분의1쯤 읽은 지금부터.

집이 너로 하여금 기억을 잊게 만들었다면 거기에는 그럴 만한 까닭이 있었을 거야. (p. 164)

납치, 실종, 미궁, 오컬트 신봉자, 초월적 사고 그리고 자신을 찾는 열여섯번째 사람. 새로운 사실 새로운 증거 그리고 새로운 사람.

그동안 안개속을 걷는 것 같던 소설은 이제 기묘한 퍼즐맞추기로 전환된 듯 읽힌다. '2012년 11월 15일의 사건 (p. 242)' 이날 매슈 로즈 소런슨은 사라지고 피라네시는 탄생했다.

'집은 헤아릴 수 없이 아름답고, 무한히 자애롭다. (p. 345)' 라는 마지막 문장은 본문에서 이미 나왔던 문장임에도 마지막에 그 의미를 달리해서 다가온다. 인간의 고독과 그 고독을 품어주는 '집'에 대해 오래도록 여운을 남긴다.

사실 소설 내용 자체만으로는 이 책을 소개하는 온갖 칭찬과 미사여구들이 와닿지 않았다. 하지만 '옮긴이의 글'을 통해 작가의 삶을 알고나니 이 소설이 새롭게 공감된다. '힘겨운 시기를 보내던 때 작가는 다른 사람가 한 공간에 있는 것이 무척 힘들었는데, 홀로 이런 세계에, 건물들로 가득하지만 조용한 세상에 있는 상상을 하면 마음이 차분해졌다고 한다. 몇 년이 흐르는 동안 조금씩 회복되면서 작가는 마음속에 있는 이야기를 단편적으로 쓰기 시작했고, 우여곡절 끝에 <피라네시>를 완성했다. (p. 351)' 자신의 삶을 담은 글은 그 울림이 클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나는 작가의 삶이 담긴 소설을 늘 애정한다. 허구일지라도 삶이 진정 담겼느냐와 담기지 않았느냐는 작품의 공감도를 전혀 달리한다. '피라네시가 집에 홀로 거주하면서 그곳에서 위로받듯이 작가도 상상속의 세계에서 조용히 위로받고 있었다. 피라네시는 그야말로 작가의 분신이었던 것이다. 이야기 속의 피라네시를 보면 '자기'를 잃고 어떤 면에서는 '분열되었다'고 할 수 있는 상태인데도 그런 그가 밝게 묘사되는 점이 신선하고 재미있었는데, 어쩌면 작가 자신도 그에게서 희망을 찾고 있었던것은 아닐까. (p. 352)' 라는 옮긴이의 말에 동의한다. 피라네시는 작가 그 자신이었다.

피라네시 라는 단어를 잠깐 검색해봤을때 그닥 소득이 없었는데 옮긴이가 해설을 붙여주어 고마웠다.

'주인공의 이름 피라네시는 18세기 이탈리아의 화가이자 건축가 조반니 바티스타 피라네시에서 따온 듯하다. 그는 16점으로 구성된 '감옥'을 판화로 발표했다고 하는데, 지하에 있는 이 감옥들을 보면 계단과 기계장치가 두드러 진다. (중략) 주인공 피라네시가 '집'이라고 부르던 공간을 상상하는 데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다. (p. 354)' 누군가에겐 집이 감옥처럼 느껴질 수도 있고 소설속 노인이 실제 감옥을 좋아했던 것처럼 감옥이 집보다 나을수도 있다. 이 소설을 읽으며 피라네시의 미궁이 감옥인가 집인가에 대해 의견이 크게 갈릴 것 같다. 감옥처럼 보이는 집일수도 집처럼 보이는 감옥일수도 있다. 매슈에겐 미궁이 감옥이었지만 피라네시에겐 집이었듯이 매슈의 집이 있는 도시가 피라네시에겐 감옥일 수 있다. 그래서 미궁을 다시 찾게 되는 심리가 이 소설을 환상문학으로 읽게하는 감정이었던 것 같다.


피라네시
수재나 클라크 / 흐름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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